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삼성이 노동자에 머리 숙여 사죄하는 날까지

 

신재길 | 교육위원장

 

 

* 이 글은, “삼성공화국, 어디로 가나”라는 ‘기획 연재’ 중 6번째 기사로, ≪프레시안≫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62045>

 

 

강남 사거리에 철탑이 있다. 철탑 위에 사람이 있다. 벌써 100여 일이 넘었다. 김용희 삼성 해고 노동자다. 삼성에서 노조를 건설하다 해고됐다. 20여 년 전 일이다. 그 후 반평생을 삼성과 싸웠다.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생을 넘나드는 고초를 겪었다. 이제 목숨을 건 마지막 투쟁을 위해 철탑에 올랐다.

 

대한민국은 삼성이 주인인 나라다. 대한민국은 사람이 돈보다 못한 나라다. 박근혜의 국정 농단에 분노한 사람들도 이재용에게는 관대하다. 사람들은 진짜 주인을 안다. 진짜 주인을 두려워한다. 박근혜는 가짜다. 이재용이 진짜다. 박근혜는 바꿀 수 있지만 이재용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돈이 권력이다.

 

김용희 삼성 해고 노동자는 외친다. 삼성이 주인이 아니다. 노동자가 주인이다. 돈이 주인이 아니다. 사람이 주인이다. 이 진리를 위해 마지막 목숨을 걸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명의 무게에 대해 많은 가치를 두었다. 이승만 독재 정권을 끝장낸 4ㆍ19는 김주열의 죽음으로 발화되었다. 전두환 군부 독재를 끝장냈던 6월 항쟁도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사람의 죽음은 무거운 의미를 지녀 왔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더 이상 죽음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죽음이 산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일은 어리석게 취급된다.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가르친다. 나와 너는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다. 가상 현실에서 서로 공감하고 좋아요를 클릭할 뿐이다. 나에게서 너로 가고 너에게서 나로 오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발현되지 않는다. 너와 내가 함께하는 우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소비될 뿐이다. 감정은 쪼개지고 파편화되었다. 사회적 분노는 사라졌다. 집단적 감정은 사라졌다. 집단적 감정은 폭력이 되었다. 이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는 없다고 주장한다. 진리는 없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진리에 대한 갈망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개개인의 욕망이 채웠다. 자유주의 사회는 개개인의 계약에 의한 규칙이 지배한다. 사회적 합의이다. 이 합의의 기준은 올바름이 아니다. 진리가 아니다. 개개인의 욕망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가 기준이 된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사회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현실적 삶과는 무관한 욕망, 원초적 이기심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지배 세력이 되고 싶은 욕망, 기득권이 되고 싶은 욕망, 자신만 이익을 얻고 싶은 욕망이다. 끝없는 욕망의 배치이다. 자본의 욕망이다. 개인의 욕망으로 포장된 자본의 욕망일 뿐이다.

 

자본의 욕망은 자유와 권리로 포장된다. 자유와 권리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합의와 배제가 필요했다. 가진 자들끼리의 합의와 못 가진 자의 배제가 필요했다. 법은 가진 자의 법이다. 법은 언제나 지배계급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다. 부르주아지가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자 기존의 법질서와 다른 개념이 필요했다. 기본권이다. 사유재산의 보장이다. 농민에게서 토지를 탈취했다. 농민은 자유를 얻었다. 노동자가 되었다. 토지는 사유재산이 되었다. 사유재산을 천부인권으로 규정하고 그들만의 법질서를 만들었다. 자본가가 되었다.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을 착취했다. 사유재산이다. 자본주의 법질서로 보호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힘이 법질서다. 이 법질서에 노동자의 자리는 없다. 법은 점거 농성하는 노조와 노동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법은 노동자의 사상을 억압한다. 법은 권력과 재산상속을 보장한다.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이 법을 지키도록 강제한다. 자본가들은 법이 자신들을 지키도록 체계화한다. 법을 지키는 사람과 법이 지키는 사람은 따로 있다. 법 앞에 모두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치주의다. 현실은 다르다. 법은 돈 앞에 평등하지 않다. 이재용과 김용희는 법 앞에 평등하지 않았다. 이재용은 법이 지켜 준다. 김용희는 법을 지켜야 한다.

 

표창장 위조는 나라를 뒤흔들 어마어마한 사건이 되었다. 그들만의 리그다. 김용희 삼성 해고자의 목숨을 건 투쟁에는 관심도 없다. 그들만의 리그에 노동자의 몫은 없다. 톨게이트 징수 노동자들의 대법원 판결을 실행하라는 요구도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된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이 창조 컨설팅이라는 노조파괴 전문가를 고용하여 노조를 파괴했다. 불법 행위다. 그러나 법은 너무 멀다. 재벌들의 불법 승계나 분식 회계도 자신들의 사유재산 증식을 위해 용서하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해고되어 길거리로 내몰린다. 해고는 죽음이다. 불법이란 딱지로 수십억 수백억씩 손해배상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강남역 사거리 두 해고 노동자는 삼성의 사과와 원직복직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는 구 독재 세력과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세력 소위 민주개혁 세력 간의 합작품이다. 주인은 삼성이다. 삼성이 세상의 진짜 주인인 노동자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는 날, 그날이 세상이 바로 서는 날이다. 빛이 어둠을 이기는 날이다. 진리가 머리를 쳐드는 날이다.

 

민주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문재인 정권은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든다고 했다.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안정화, 공정 경제, 혁신 경제를 제시했다.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은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최저임금 1만 원을 포기하고 산입 범위는 확대했다. 일자리 안정화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이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자회사에 몰아넣었다. 공정 경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대기업이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는 것을 허용했다. 마지막으로 혁신 경제다. 혁신적 기술을 가진 기업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혁신적 기술은 대체로 대기업이 가지고 있다. 대기업 지원 정책이다. 이게 노동자 존중의 실체다. 독재 세력과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세력은 자본가의 이익을 누가 더 잘 보장하는가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존중재벌 존중으로 읽어야 한다.

 

삼성이 노동자에게 머리를 숙여 사죄하는 날을 위해서는, 세상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빛이 어둠을 이기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넘어가야 한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진보가 아니라 구질서의 방식이다. 낡은 사고이다. 낡은 사고는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 청년 실업, 입시 경쟁 등 구시대의 구질서를 유지 강화해 왔다. 상대주의와 다양성, 가치의 중립, 개인주의적 자유, 탈권위 등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겉모습이다. 좋아 보였다. 문재인 정권의 노동자 존중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노동자 존중은 실제로 재벌 존중이었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실제도 개인과 개인의 끊임없는 파편화이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발전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제 다시 그날을 요청하자.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요청하자. 주인이 주인되는 세상이다. 주인이 노예인 세상은 거짓이다. 주인이 주인인 세상이 진리이다. 이제 다시 진리를 요청하자. 언제부터인가 노동 해방 구호가 사라졌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원인일까? 아니다. 그날은 완벽히 설계된 씨스템이 아니다. 오웬의 협동조합, 빠리 꼬뮌, 인터내셔날, 쏘비에트, 인민 위원회, 노동자 평의회 등, 이 모두는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한 실험들이다.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했다. 그날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빛이기 때문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어둠의 기준은 빛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상을 꿈꿔야 한다. 그날에 대한 요청이 없다면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모순들이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계급 모순을 보지 못한다면, 노동자 존중에 내재하는 재벌 존중을 볼 수 없다. 상대주의와 다양성에 내재하는 절대주의와 획일성을 볼 수 없다. 가치의 중립에 내재하는 가치의 편향을 볼 수 없다. 개인주의적 자유에 내재하는 전체주의적 구속을 볼 수 없다. 탈권위에 내재하는 굴종을 볼 수 없다. 이제 다시 노동 해방을 들자. 김용희 노동자가 승리하는 그날까지. 아니 세상의 모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그날까지.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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