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레닌주의의 제 문제(4)(쏘련 공산당(볼쉐비끼) 레닌그라드 조직에 드림)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1. 레닌주의의 정의

2. 레닌주의의 주요 문제

3. 영구 혁명 문제

4.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5.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에서의 당과 노동계급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6.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에 관한 문제

7.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를 위한 투쟁

 

 

5.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에서의 당과 노동계급(하)

 

이제 우리는 당과 계급, 노동계급 내의 당원과 비당원 간의 상호 관계 문제에 이르렀다.

 

레닌은 이러한 상호 관계를 노동계급의 전위와 노동자 대중 간의 상호 신뢰(제26권, p. 235.)(강조는 쓰딸린)라고 규정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첫째로, 당은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대중의 혁명적 본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대중의 투쟁 경험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정책의 올바름을 검증해야 한다는 것, 결국 대중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당은 매일매일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는 것, 정책과 사업으로 대중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 명령할 것이 아니라 먼저 대중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당의 정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것, 결국 당은 자기 계급의 안내자, 지도자,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건을 위반하는 것은 전위와 계급 간의 올바른 상호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고, 상호 신뢰를 약화시키고, 계급과 당의 규율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확실히 모든 사람들이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 당에 가장 엄격하고 참다운 철의 규율이 없었다면, 또 노동계급 대중 전체, 즉 노동계급 가운데서 의식 있고 성실하며 헌신적인 영향력 있는 분자들이 당에 대해 전폭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면, 볼쉐비끼는 2년 반은 고사하고 2개월 반도 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25권, p. 173.)

 

레닌은 계속 말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낡은 사회의 힘들과 전통을 반대하는 유혈적 및 무혈적, 폭력적 및 평화적, 교육적 및 행정적인 강고한 투쟁이다. 수백 수천만 사람의 관습적 힘이 가장 무서운 힘이다. 투쟁에서 단련된 강철 같은 당이 없다면, 계급의 모든 성실한 사람들의 신임을 받는 당이 없다면, 대중의 분위기를 살피고 대중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당이 없다면, 이런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25권, p. 190.)

 

그런데 당은 계급의 이러한 신뢰와 지지를 어떻게 획득하는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필요한 노동계급의 강철 같은 규율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떠한 기반 위에서 성장하는가?

 

레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당의 규율은 무엇에 의해서 유지되는가? 무엇에 의해서 감독되는가? 무엇에 의해서 강화되는가? 첫째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자각과 혁명에 대한 헌신, 인내, 자기희생, 용감성에 의해서이다. 둘째, 가장 광범한 근로인민 대중[강조는 쓰딸린]―주요한 프롤레타리아트뿐만 아니라 비프롤레타리아까지도 포함하는 근로인민 대중―과 연계를 맺고,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며, 원한다면 어느 정도 동화될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이다. 셋째, 전위가 수행하는 정치적 지도와 정치적 전략 전술의 올바름에 의해서, 그리고 그 올바름을 매우 광범위한 대중이 자기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얻는 확신에 의해서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없다면, 부르주아지를 전복하고 전 사회를 변혁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선진 계급의 당이 될 수 있는 혁명적 당 규율을 실현할 수 없다. 이러한 조건들이 없다면, 규율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불가피하게 허사, 공문구, 단순한 겉치레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들은 단번에 이루어질 수 없다. 오직 장기적인 노력과 쓰라린 경험에 의해서만 조성된다. 이러한 조건의 조성은 오직 올바른 혁명 이론에 의해서만 촉진된다. 올바른 혁명 이론이란 교조가 아니라 진정 대중적이고 진정 혁명적인 운동의 실천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만 최종적으로 이루어진다. (제25권, p. 174.)

 

그리고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본주의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도적 당(공산당)과 혁명적 계급(프롤레타리아트) 그리고 대중(피착취 근로인민 전체) 상호 간에 올바른 관계가 요구된다. 오직 공산당만이, 만약 공산당이 진정 혁명적 계급의 전위가 된다면, 만약 그 혁명적 계급의 최고로 뛰어난 대표자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면, 만약 이 대표자들이 강고한 혁명 투쟁의 경험을 통해 육성되고 단련되어 계급 의식으로 무장된 헌신적인 공산주의자들이라면, 만약 이 공산주의자들이 자기 계급과 생활 전체에서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를 통해 피착취 대중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리고 이 계급과 대중 속에서 완전한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면 ― 오직 이러한 당만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모든 자본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가장 무자비하고 결연한 최후의 투쟁으로 이끌 수 있다. 다른 한편, 오직 이러한 당의 지도 아래서만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적 공세에서 모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의해 타락한 소수의 노동 귀족과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낡아 빠진 지도자들이 보이는 판에 박은 냉담함과 부분적인 저항을 좌절시킬 수 있다. 오직 그래야만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구조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차지하는 인구 비율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제25권, p. 315.) (강조는 쓰딸린.)

 

이러한 인용들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1)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필요한 당의 권위와 노동계급 내부의 강철 같은 규율은 위협이나 당의 무제한적 권력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의 당에 대한 신뢰와 지지에 근거하는 것이다.

2) 노동계급의 당에 대한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강요에 의해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대중 속에서 당이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사업에 의해서 얻어진다. 올바른 당 정책과 이 정책의 올바름을 대중들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확신하도록 하는 당의 능력에 의해 얻어진다. 당이 노동계급의 지지를 확보하고 노동계급 대중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3) 대중의 투쟁 경험에 근거한 당의 올바른 정책이 없다면, 그리고 노동계급의 신뢰가 없다면 당의 진정한 지도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 없다.

4) 당이 계급의 신뢰를 받고 당의 지도가 진정한 지도라면, 당과 당의 지도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대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의 신뢰를 받는 당의 지도(당의 독재)가 없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전혀 공고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없다면 당의 권위와 노동계급의 철의 규율은 빈말이거나 과대망상이거나 모험주의가 되고 만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당의 지도(독재)를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의 지도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주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빠리 꼬뮌 같이 완전하지 못하고 강고하지 못한 경우가 아니라 완전하고 강고한 독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당의 지도는 말하자면 동일한 활동 노선 위에 놓여 있으며 동일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립시킬 수 없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의 독재인가 아니면 계급의 독재인가? 지도자들의 독재(지도자의 당)인가 아니면 대중의 독재(대중의 당)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벌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한 생각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준다. … 누구나 알고 있듯이 대중은 여러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 계급들은 적어도 근대 문명국들에서는 대개의 경우 정당들에 의해 지도된다. 정당은 일반적으로 가장 책임 있는 자리에 선출되어 지도자라고 불리는 가장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로 구성된 다소 안정적인 집단에 의해 지도된다. … 일반적으로 대중의 독재와 지도자들의 독재를 대립시키는 것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가소로운 수작이며 어리석은 일이다. (제25권, pp. 187-188.)

 

참으로 올바른 말이다. 그러나 이 올바른 주장은 전위와 노동 대중, 당과 계급 사이에 올바른 상호 관계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 명제는 전위와 계급 사이의 상호 관계가 말하자면 정상적이며 상호 신뢰의 범위 내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전위와 계급 사이의 올바른 상호 관계, 당과 계급 사이의 상호 신뢰의 관계가 파괴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만일 당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계급에 대립시키기 시작하여, 그래서 당과 계급의 올바른 상호 관계의 기초가 파괴되고, 상호 신뢰의 기초가 파괴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도대체 그러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가?

 

물론,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가능하다.

 

1) 당이 대중 속에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데 있어, 활동 성과와 대중의 신뢰에 의거하지 않고 무제한적 권력에 의거하는 경우.

2) 당의 정책이 명백히 잘못인데 그 오류를 재검토하고 시정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

3) 당의 정책이 전반적으로 올바르지만, 대중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대중이 자신의 경험으로 당의 정책이 올바르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려 하지 않거나 기다릴 줄 모르고 대중에게 강요하려고 하는 경우.

 

우리 당의 역사에서 이러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우리 당내의 다양한 그룹과 분파들이 이 세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나 이 세 가지 조건 모두를 위배하여 몰락하거나 소멸하였다.

 

이로부터 당의 독재(지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대립시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올바르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1) 노동계급에 대한 당의 독재를 독재라는 말의 본래 의미(폭력에 의거한 권력)가 아니라 레닌이 이해한 의미인 노동계급 전체나 그 다수에 대한 폭력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그런 당의 독재인 경우.

2) 당이 계급의 진정한 지도자로 될 만한 자격을 가진 경우, 다시 말해 당의 정책이 올바르고 그 정책이 계급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

3) 계급, 계급의 다수가 당의 정책을 받아들이고, 그 정책을 자신의 것으로 하며, 당 활동의 성과로 이 정책이 올바르다는 것을 확신하며, 당을 신뢰하고 당을 지지하는 경우.

 

이런 조건들에 대한 위반은 불가피하게 당과 계급 사이의 충돌과 분열을 초래하고 대립을 야기한다.

 

폭력으로 당의 지도를 계급이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겠는가? 아니, 안 된다. 어떤 경우든 그러한 지도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당이 노동계급의 당이 되려고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당이 노동계급의 안내자이며, 지도자이며, 선생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에 대해 소책자 ≪국가와 혁명≫에서 언급한 레닌의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맑스주의는 노동자당을 교양함으로써 모든 피착취 근로자들의 선생, 안내자, 지도자가 될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를 길러 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는 권력을 장악하고 전체 인민을 사회주의로 인도하며, 새 제도를 지도하고 조직하며, 피착취 근로자들을 부르주아지가 없고 부르주아지에 반하는 자신들의 사회적 삶을 건설하는 사업으로 이끈다. (제21권, p. 386.)

 

만약 당의 정책이 올바르지 못하고, 그 정책이 계급의 이익과 충돌한다면, 당을 계급의 진정한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인정할 수 없다. 그러한 경우에 당이 지도자로 남기 위해서는 그 정책을 반드시 재검토하고 시정해야 하며, 그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아야만 한다. 이 논제에 대해 우리 당의 역사에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잉여곡물 징발제를 폐지한 시기에 노동자 농민 대중은 우리의 정책에 분명히 불만을 갖고 있었다. 당은 공개적이고 성실하게 이 정책을 재고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은 당시 레닌이 제10차 당 대회에서 잉여곡물 징발제 폐지와 신경제 정책 도입에 관해 말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도 숨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말해야만 한다. 농민들은 우리와의 관계에 만족해 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농민은 이러한 의지를 명확히 표현해 왔다. 이것은 엄청난 근로인민 대중의 의지이다. 우리는 이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매우 냉정한 정치가들이다. 농민에 대한 우리의 정책을 재고하자. (제26권, p. 238.) (강조는 쓰딸린.)

 

단지 당의 정책이 일반적으로 올바르다는 이유만으로 당이 대중의 결정적인 행동을 조직하는 데 주도권과 지도력을 장악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만약 계급이 정치적 후진성으로 인해 당의 정책에 신뢰와 지지를 아직 보내지 않는 경우, 또는 사태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이 당 정책의 올바름을 계급에게 확신시키지 못한 경우, 이러한 경우에 당이 진정한 지도자가 되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당 정책의 올바름을 대중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대중이 자기 스스로의 경험으로 당 정책의 올바름을 확신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레닌은 말한다.

 

만약 혁명적 당이 혁명적 계급의 선진 부대와 나라 전체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봉기는 불가능하다. (제21권, p. 282.)

 

혁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다수가 견해를 바꿔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대중의 정치적 경험에 의해서 야기되는 것이다. (제25권, p. 221.)

 

프롤레타리아 전위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데올로기적 성공 없이는 승리를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승리까지는 아직도 먼 길이 남아 있다. 전위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아직 전 계급이, 그리고 광범한 대중이 전위를 직접 지지하거나 적어도 전위에 우호적 중립의 입장이고 적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기 전에, 오직 전위만으로 결정적 전투에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범죄 행위이다. 그런데 정작 모든 계급, 광범한 근로인민 대중과 자본의 억압을 받는 사람들이 그러한 입장을 취하도록 하자면, 단지 선전과 선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중 자신의 정치적 경험이 있어야만 한다. (같은 책, p. 228.)

 

알다시피 우리 당은 레닌의 4월 테제에서 1917년 10월 봉기에 이르는 시기에 이런 방식으로 행동했다. 그리고 바로 당이 레닌의 지침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봉기에 성공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전위와 계급 사이의 올바른 상호 관계를 위한 조건들이다.

 

당의 정책이 올바르고 전위와 계급 관계가 올바를 때 지도란 무슨 의미인가?

 

이러한 조건하에서 지도란, 당 정책의 올바름을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중을 당의 입장으로 끌어들이고, 대중이 자기 스스로의 경험으로 당 정책의 올바름을 깨닫게 하는 슬로건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중을 당의 의식 수준에까지 높이고, 그렇게 하여 대중의 지지와 결정적 투쟁에 대한 대중의 결의를 확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설복의 방법은 당이 계급을 지도하는 기본 방법이다.

 

레닌은 말한다.

 

오늘날 러시아는 러시아와 3국 협상국 부르주아지에 대한 2년 반에 걸친 전례 없는 승리를 거둔 직후이다. 우리가 독재의 승인을 노동조합의 가입 조건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대중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을 손상시킬 것이며 멘쉐비끼를 도와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자들의 모든 임무는 후진적 대중을 설복시킬 줄 알고, 그들 속에서 활동할 줄 아는 데 있는 것이다. 결코 억지스럽고 유치한 좌익적 슬로건으로 스스로를 대중과 분리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제25권, p. 197.)

 

이것은 물론 당이 모든 노동자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설복한 다음에야 비로소 행동할 수 있다거나, 그런 다음에야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결코 그래선 안 된다! 이것은 단지 당이 결정적인 정치적 행동을 취하기 전에 장기간에 걸친 혁명적 활동을 통해 노동자 대중 대다수의 지지를 확보하거나, 최소한 계급 대다수의 우호적 중립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레닌의 테제, 즉 혁명 승리의 필수 조건으로 당이 노동계급 대다수를 획득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그런데 만약 소수가 다수의 의지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기를 원치 않거나 동의하지 않는다면 소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수의 신뢰를 받고 있는 당은 소수로 하여금 다수의 의지에 복종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가? 그리고 강요해야 하는가? 그렇다. 강요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지도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본 방법인 대중 설복 방법에 의해 보장된다. 하지만 이 방법은 강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제를 전제로 한다. 이는 강제가 당에 대한 노동계급 대다수의 신뢰와 지지에 기초한 경우이며, 강제가 다수를 설복한 후에 소수에 적용될 경우이다.

 

이 주제에 대하여 노동조합 문제에 관한 토론 과정에서 일어났던 당내 논쟁을 상기해 보는 것이 좋겠다. 당시 반대파와 쩨끄뜨란(Tsektran)1)의 오류는 무엇이었나? 당시 반대파가 강제에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류였나? 아니다! 오류는 그 점에 있지 않다. 당시 반대파의 오류는 자신들의 입장이 올바르다고 다수를 설복시킬 능력이 없었는데, 다수의 신뢰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적 방법을 사용하여 다수의 신뢰를 받는 사람들을 뒤흔들어 놓자고 주장한 점이었다.

 

당시 레닌이 제10차 당 대회에서 한 노동조합에 관한 연설을 보자.

 

노동계급의 전위와 노동자 대중 사이의 상호 관계와 상호 신뢰를 확립하기 위해서, 쩨끄뜨란이 오류를 범했다면 … 그것을 시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오류를 옹호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정치적 위험의 근원이 된다. 만약 꾸뚜조프(Kutuzov)가 표현했던 분위기 때문에 최대한 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정치적 파산에 직면했을 것이다. 우리는 먼저 설득하고 그 다음에 강제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먼저 설득하고 그 다음에 강제해야 한다. 우리는 광범한 대중을 설득할 줄 몰랐다. 우리는 대중과 전위의 올바른 상호 관계를 망치고 말았다. (제26권, p. 235.) (강조는 쓰딸린.)

 

레닌은 소책자 ≪노동조합에 관하여≫에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가 강제를 실행하기 전에 설득이라는 토대를 능숙하게 마련할 때 강제를 올바르고 성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같은 책, p. 74.)

 

이것은 완전히 옳은 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건들이 없다면 어떠한 지도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만 당내의 행동 통일을, 또 계급 전체의 행동 통일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동계급의 대열은 분열, 혼란, 와해될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노동계급에 대한 당의 올바른 지도의 기본 원칙이다.

 

지도를 이와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쌩디칼리즘, 무정부주의, 관료주의 및 다른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으나, 볼쉐비즘이나 레닌주의는 아니다.

 

당과 노동계급, 전위와 노동자 대중 사이에 상호 관계가 올바르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당의 지도(독재)와 대립될 수 없다. 그러나 이로부터 당과 노동계급, 당의 지도(독재)와 노동계급의 독재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의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립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쏘린(Sorin)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우리 당의 독재라는 그릇된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레닌은 이 대립만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동시에 대중의 독재를 지도자들의 독재에 대립시키는 것도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여러분은 우리가 지도자들의 독재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동일시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 길을 따른다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우리 지도자들의 독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결론은 실로 당의 독재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동일시하는 정책에 기인한다. …

 

지노비예프(Zinoviev)는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인가?

 

지노비예프도 본질적으로 쏘린과 같은 견해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쏘린이 솔직하고 명백하게 표현한 반면, 지노비예프는 어물쩍댄다는 점이다. 이는 지노비예프의 ≪레닌주의≫라는 책자에서 다음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노비예프는 말한다.

 

쏘련의 현존하는 제도는 계급적 내용으로 보아 어떤 것인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쏘련에서 권력의 직접적인 원천은 무엇인가? 누가 노동계급의 권력을 행사하는가? 공산당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는 당의 독재가 있다. 쏘련에서 권력의 법률적 형태는 어떤 것인가? 10월 혁명에 의해 수립된 국가 제도의 새로운 형태는 어떤 것인가? 쏘비에트이다. 양자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강조는 쓰딸린.)

 

물론 전체 노동계급에 대한 당의 독재가 당의 지도를 의미할 경우, 양자는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당의 독재 사이에, 쏘비에트 체제와 당의 독재 사이에 어떻게 등호를 그릴 수 있겠는가? 레닌은 쏘비에트 체제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동일시하였다. 그가 옳다. 쏘비에트, 우리 쏘비에트는 당의 지도하에 프롤레타리아 주위에 근로 대중을 결속시키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닌이 언제, 어디서, 어느 저작에서 지노비예프가 지금 말하는 것과 같이 당의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이에, 당의 독재와 쏘비에트 체제 사이에 등호를 그렸는가? 물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당의 지도(독재)나 지도자들의 지도(독재)와 모순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를 근거로 여러분은 우리나라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 당의 독재 국가, 지도자들의 독재 국가라고 선언할 수 있겠는가? 이런 어리석은 결론은 지노비예프가 비겁하게 슬쩍 내세운 당의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동일시하는 원칙에 기인한다.

 

나는 레닌의 수많은 저작 가운데서 당의 독재 문제를 다룬 다섯 경우에 주목하여 지나가면서 언급하고자 한다.

 

첫 번째 경우는, 사회혁명당 및 멘쉐비끼와의 논쟁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를 일당 독재라고 비난하고 사회주의 통일 전선을 제안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렇다. 일당 독재다! 우리는 일당 독재를 고수하며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당은 수십 년에 걸쳐 전체 공장 및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라는 지위를 획득한 당이기 때문이다. (제24권, p. 423.)

 

두 번째 경우는, 꼴차크(Kolchak)에 대한 승리와 관련하여 노동자와 농민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들(특히 멘쉐비끼와 사회혁명당원들, 심지어 그들 중 좌익이라고 하는 자들까지 모두)은 일당 독재, 즉 볼쉐비끼, 공산주의자들의 당 독재라는 도깨비를 가지고 농민들을 위협하려고 한다.

농민들은 꼴차크의 예에서 이러한 도깨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지주와 자본가의 독재(즉, 철의 지배)냐 아니면 노동계급의 독재냐, 둘 중 하나이다. (제24권, p. 436.)

 

세 번째 경우는, 레닌이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태너(Tanner)와 논쟁할 때 한 연설이다. 이는 이미 인용한 바 있다.2)

 

네 번째 경우는, 소책자 ≪공산주의에 있어서 좌익소아병≫에 있는 몇 구절들이다. 이는 이미 위에서 인용하였다.3)

 

그리고 다섯 번째 경우는, ≪레닌 문선(文選)(Lenin Miscellany)≫ 제3권에 수록된 일당 독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개요 초안(≪레닌 문선≫ 제3권, p. 497.)이다.

 

이 중 두 경우, 즉 두 번째와 마지막 경우에 레닌은 일당 독재라는 말에 인용 부호를 붙였다. 이렇게 하여 이 정식의 부정확하고 비유적인 의미를 명백히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겠다.

 

이 모든 경우에 레닌은 당의 독재을 카우츠키(Kautsky)와 그 일당의 중상모략과는 반대로 노동계급에 대한 독재가 아니라 지주와 자본가들에 대한 독재(철의 지배)를 의미한다는 것도 지적해야겠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에서 당의 역할에 대해 논하거나 혹은 다만 언급하고 있는 레닌의 모든 저작들에서, 기본 저작이든 부차적 저작이든 간에 특징적인 것이 있다. 이 저작들 중 그 어느 저작에서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우리 당의 독재라는 암시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이 저작들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한 행 한 행이 모두 그러한 정식을 반대하고 있다(≪국가와 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 ≪공산주의에 있어서 좌익소아병≫ 등등을 보라).

 

더욱 특징적인 것은 레닌의 직접적인 지도하에 작성되었고, 레닌이 당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올바른 정식화의 전형으로 되풀이하여 언급한 정당의 역할에 관한 코민테른 제2차 대회의 테제에서 우리는 당의 독재라는 말을 한 마디도, 문자 그대로 단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나타낸다.

 

가) 레닌은 당의 독재라는 정식을 비난할 여지없는 정확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식은 레닌의 저작에서 아주 드물게 사용되었으며, 사용할 경우에도 종종 인용 부호가 붙어 있었다.

 

나) 레닌은 반대자들과의 논쟁에서 당의 독재에 대해 말해야 할 드문 경우에도 대개 일당 독재를 언급했다. 즉 우리 당은 단독으로 권력을 잡는다는 것, 다른 정당들과 권력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게다가 노동계급에 대한 당의 독재란, 당의 지도, 당의 지도적 역할을 의미한다고 언제나 분명히 했다.

 

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에서 당의 역할을 과학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을 때, 언제나 노동계급에 대한 당의 지도적 역할을 말했을 뿐이다(이러한 경우는 수천 번이나 된다).

 

라)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당의 역할에 관한 기본 결정에 당의 독재라는 정식을 삽입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나는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채택된 결정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마) 당의 독재, 따라서 지도자들의 독재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동일시하거나 동일시하려고 하는 동지들은 레닌주의 견지에서 옳지 못하고, 정치적으로는 근시안적이다. 전위와 계급 사이의 올바른 상호 관계의 조건들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제한이 없는 당의 독재라는 정식은 실천 사업에서 많은 위험과 정치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아무런 제한이 없는 당의 독재라는 정식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다.

 

가) 비당원 대중에게: 감히 항거하지 마라. 감히 의견을 말하지 마라. 당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며, 우리는 당의 독재이기 때문이다.

 

나) 당 간부들에게: 더 용감하게 행동하라. 좀 더 억압하라. 비당원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당의 독재이다.

 

다) 당 최고 지도부에게: 어느 정도 자기도취에 빠져도 무방하다. 심지어 거만해도 좋다. 우리는 당의 독재, 결과적으로 지도자들의 독재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정치적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지금, 이러한 위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지금은 대중의 목소리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데 당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특히 중요한 때이다. 지금은 대중의 요구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우리 당의 기본 행동 수칙이 되어야 할 때이다. 지금은 당의 정책에서 특별한 신중함과 특별한 유연성이 요구되는 때이다. 지금은 거만해질 위험성이 당이 대중을 올바르게 지도할 때 부닥치는 가장 엄중한 위험의 하나로 될 때이다.

 

우리는 우리 당의 제11차 대회에서 한 레닌의 다음과 같은 황금 같은 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민대중 속에 있는 우리[공산당원들: 쓰딸린]는 바다 속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 우리는 오직 인민이 의식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반영할 때에만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도할 수 없고, 프롤레타리아트는 대중을 지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기관은 파괴될 것이다. (제27권, p. 256.)

 

인민이 의식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 ―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에서 기본적인 지도 세력이라는 영광된 역할을 당에 보장하는 필수 조건인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1) [≪쓰딸린 선집≫ 편집자 주] 쩨끄뜨란(Цектран). 철도 및 수상운송 노동조합연합 중앙위원회. 1920년 9월에 창설되었다. 1920년과 1921년 초에 쩨끄뜨란의 지도부는 뜨로쯔끼주의자들의 수중에 있었다. 이들은 노동조합 활동에서 순전히 강제와 명령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1921년 3월에 열린 철도 및 수상운송 노동조합 전 러시아 제1차 연합 대회에서 뜨로쯔끼주의자들은 지도부에서 축출되었고, 새로운 중앙위원회가 선출되어 노동조합 활동의 새로운 방법을 수립하였다.

 

2) [역자 주] 쓰딸린, “레닌주의의 제 문제(3)”, ≪정세와 노동≫ 제154호(2019년 9월), pp. 95-96.

 

3) [역자 주] 이번 호에 번역된 부분 중 ≪레닌 저작집≫ 제25권으로부터 인용된 부분들을 말한다. 이 저작은 Lenin Collected Works, Volume 31, Progress Publishers, 1964, pp. 17–118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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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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