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 “현 시기 민족 문제”의 본질과 통일 운동, “현 시기 민족 문제”의 본질과 통일 운동,

 

채만수 | 소장

 

 

 

8ㆍ15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거행된 2019 조국통일촉진대회에 참가하면서 지난 8월 14일 연구소는, 조국통일 운동, 이제 달라져야 한다1)는 글을 발표, 기존 통일 운동의 지배적인 기조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 일부에서 이의가 제기되었다. 좌익적 계급지상주의라거나, 계급주의계급환원론 따위의, 초과학적 입장의 고고(孤高)한 광담패설에서부터, 서로의 견해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즉 논의ㆍ논쟁을 통해서 상호 이해와 협조를 높여 가자는, 범민련 남측본부 편집국[이하에서는 간단히 범민련이라고 호칭한다]의 기고,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조국통일과 사회진보에 기여하는 민족대단결2)(2019. 9. 24.)까지.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에서의 민족 문제는 미 제국주의에 의한 신식민지주의적 지배와 그에 따른 남북의 분단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3) 따라서 미제의 신식민지적 지배의 극복과 남북 분단의 극복, 즉 통일은 기필코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양대 민족적 과제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는 우리도, 우리가 그 운동의 기조에 이의를 제기한 민족주의 진영4)도 이의가 없다. 아니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제의 해결, 특히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운동ㆍ투쟁의 기조에 이의가 발생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 양대 과제의 실체ㆍ성격ㆍ구조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특히 신식민지적 지배와 통일이라는 양대 민족적 과제와, 자본주의적 착취ㆍ억압의 극복이라는 계급적 과제의 상호 관계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이번에 범민련이 기고문에서 통일과 변혁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이면서 동시에 독자성을 갖기 때문에 이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면서 공동의 실천으로 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5)라고 말할 때의 바로 그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따라서 변증법적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통일과 변혁의 관계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에 이견ㆍ이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해의 차이, 그에 따른 이의ㆍ이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과 배경부터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아무리 진부하게 보일지라도, 해묵은 문제이면서도 언제부터인가 그 해결을 위한 논의 자체가 사실상 실종되어 온 문제, 즉 대한미국에서의 사회과학의 압살과 소생, 그 발전의 좌절의 문제로까지 우리의 관심을 소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식민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과학의 압살

대한미국의 헌법은 국민의 온갖 자유와 권리에 대한 규정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했으며, 어떠한가?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서만 얘기하자면, 사상ㆍ학문ㆍ언론, 그리고 결사의 파쑈적 억압! 즉, 신식민지 자유민주주의 바로 그것이 그 실제의 역사였고, 또한 현실이다. 그것이 실제의 역사였다는 데에 대해서는 이제 이 사회에 사실상 더 이상 어떤 이견도 없을 것이다. 그 억압의 주요 주체였던 이 사회의 극우 정치 세력들조차도 이제는 이 사회가 민주화됐다(!)고 떠들어 대는 마당, 즉 그 역사는 파쑈적 억압이었다고 떠들어 대는 마당이니 말이다.

그러나 저들 극우의 참으로 낯짝 두꺼운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처지와 세계관 때문에 현재의 상황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진보 지식인들, 자유주의자들의 태평스러운 믿음ㆍ주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사실은 민주화되어 있지 않다. 광주 항쟁ㆍ학살에 의해서 촉발된 1980년대의 대대적인 민주화 투쟁, 특히 1987년의 대항쟁의 성과로 파쑈적 억압이 많이 누그러진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내세운 노동자ㆍ민중의 정치적 결사와 진출을 억압ㆍ봉쇄하는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사회가 노동자ㆍ민중에게 있어 어떻게 민주화된 사회란 말인가?

이러한 신식민지 자유민주주의의 사상ㆍ학문ㆍ언론, 그리고 결사의 파쑈적 억압의 중대한 악효과의 하나는 사회과학의 압살이었다. 그리고 이 사회과학의 압살에 따른, 우리 사회의 모순에 대한 과학적 분석ㆍ사고의 결여 혹은 부족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주제에 이의ㆍ이견을 발생시키고 있는 가장 큰 원인과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신식민지 자유민주주의의 사회과학 압살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다른 기회6)에도 인용한 적이 있지만, 한 역사가의 익살 섞인 증언을 통해서 다시 들어보자.

 

1970년대 말, 한 대학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불온서적 열람과 대출을 금지하라는 상부 지시에 따라 사서들이 바삐 움직이는 중에, 한 사람이 서가에서 막스 베버의 책을 치웠다. 작업을 감독하던 상사가 그에게 호통을 쳤다. 어이, 카를 마르크스 책을 치우랬더니 막스 베버 책은 왜 치우나? 둘은 다른 사람이라고. 사서가 대답했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경찰은 모를 수도 있잖아요. 실제로 1980년대에는 가방 안에 막스 베버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책을 넣어 두었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곤욕을 치른 학생이 적지 않았다. / … / 1909년 2월 23일 출판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형식은 대한제국 법률이었으나 불온성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은 일본 제국주의의 관점이었다. 일제는 1910년 8월 한국을 강점한 즉시 서적 수백 종의 발행과 판매를 금지했다.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에 금서(禁書)로 지정된 도서는 3천 종이 넘었다. 해방 후에도 불온서적 지정과 탄압은 계속됐고, 특히 국가보안법은 불온서적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두었다. 한국에서 불온서적은 오랫동안 불법무기나 마약과 같은 물건이었다.7)

 

가방 안에 막스 베버나 … 마르쿠제 책을 넣어 두었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맑스의 저서를 소지했다는 혐의로 곤욕을 치른 학생이 적지 않았다! 물론, 1980년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1960년대ㆍ70년대에도 그랬고, 사실 그때에는 더욱 그랬다. 자본의 착취ㆍ억압 체제를 옹호하고 합리화하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부르주아 비과학만이, 그러한 비과학자들만이 사회과학ㆍ사회과학자의 이름으로 활개를 쳤다. 그리고 지금도 사실상 그렇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적 상황이었으니, 노동자ㆍ민중이 이 사회를, 자신들의 처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인식할 이론적 무기를 가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현재도 크게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특히 1960년대 후반 이후 대대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제2차 대전에 힘입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이른바 황금시대의 종언과도 맞물려,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이 격화되었고, 따라서 착취와 억압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1970년대에 접어들자마자, 본질적으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인 청년ㆍ학생 운동을 넘어, 노동자들의 운동으로까지 발전해 갔다.

유신 체제ㆍ긴급 조치들로 절정에 달하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파쑈 폭압의 강화는, 외견상으로는 청년ㆍ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초에는 바로 저항과 투쟁의 이러한 계급적 성격ㆍ주체의 교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의 운동ㆍ투쟁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조차도 아직 즉자적이었고,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시야에 갇혀 있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적 사상ㆍ학문ㆍ언론 및 결사의 억압 덕택이었다.

그러나 사회도 의식도 모순의 격화와 함께 유전(流轉)하는 법. 대망(大望)의 80년대! 운운하면서 거대하게 발전하던 자본주의적 생산, 그에 따른 모순과 대립의 격화, 그것은 마침내 1979년 10월의 부마항쟁을 계기로 박정희 군사정권의 무단(武斷) 파쑈체제를 파열시켰다.8) 그리고,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80년 5월의 광주항쟁과 전두환 등의 군부에 의한 학살은 저항ㆍ투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학살과 억압의 배후에 미 제국주의가 있다는 사실이 대중적으로 폭로9)되었고, 자유민주주의가 그 알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한국사회 성격 논쟁, 사회구성체 논쟁이라는 형태로 사회과학이 대중적으로 역동적으로 소생하기 시작했다.10)

 

성과가 멍에로!
― 즉, 노동자ㆍ민중 운동의 분열과 그 고착화로!

1980년대의 대중운동ㆍ대중투쟁의 폭발적 성장과 그에 수반한 사회과학의 소생ㆍ발전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운동과 투쟁은 더 이상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한계에 갇혀 있기를 거부했고, 변혁 지향적으로 되었다. 사회과학의 소생과정이 사회성격 논쟁, 혹은 사회구성체 논쟁이라는 형태를 취한 것도 바로 그 변혁 지향적 성격을 반영한 것이었다. 즉, 한국사회의 역사적 성격, 혹은 그 역사적 계급구성을 명확히 구명하고, 그에 기초해서 변혁의 성격과 그 담당ㆍ추진 주체 및 보조역량들을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성과는, 다시 말하지만, 가히 혁명적이었다. 우리의 언어생활에 혁명을 가져올 만큼!

예컨대, 미 제국주의, 즉 U.S. imperialism이라는 말은, 본토 미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쓰이는 말이었지만, 자유 대한미국에서는 달랐다. 미제미 제국주의를 입에 담거나, 글로 썼다가는 (현재는 국가보안법으로 통합된) 반공법에 걸려 곤욕을 치러야 했고, 자칫하면, 조직 사건으로 조작되어 골로 갈 수도 있었다. 외세라는 말이 제국주의 특히 미 제국주의라는 말 대신에, 그것도 상당히 망설이며 어렵게, 쓰였고, 그에 대한 일종의 은어였다. 계급이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여서, 일등병이니, 이등병이니, 혹은 장군이니 하는 의미의 군대적 사용법을 떠나, 노동자계급이니, 자본가계급이니 했다가는 역시 반공법에 걸려 곤욕을 치러야 했고, 자칫하면, 역시 골로 갈 수 있었다. 인민이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여서 사실상 누구도 입에 올리지 못했고, 심지어 데모 주동자로 찍힌 학생들이 경찰에 잡혀가면, 너 이 새끼, 민중, 민중 하는데, 민중이란 말이 무슨 뜻이냐? 인민 대중이란 뜻이지?! 하면서 몽둥이질해대기 일쑤였다. 오늘날 동무라는 말이 사실상 사라지다시피 하고, 친구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 것도 모두 다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적 억압ㆍ공포 덕분이다.

그런데 아무튼 1980년대 중ㆍ후반 이후의 대중 투쟁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과학의 소생으로, 그 성과로 우리는 더 이상 그러한 언어의 억압은 받지 않게 되었다. (인민이란 말은 아직도 완전히는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해, 사람들의 뒤통수를 잡아당기고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 제국주의라는 말의 해방! 즉, 민족적 억압ㆍ모순의 대중적 발견! 그리고 노동자계급자본가계급이라는 말의 해방! 즉, 계급적 억압ㆍ착취의 대중적 발견! 그것은, 누가 뭐래도, 그 투쟁의 혁명적 성과였다. 그리고 이 성과는 더욱 성숙ㆍ완성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발전은 중도반단되고 말았다. 1990년을 전후하여 발생한,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 체제의 해체라는 세계사의 대반동과 더불어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여러 유형의 청산주의가 이 사회에서도 그 지적 세계를 휩쓸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다른 한편에서는, 이른바 좌익 공산주의나 각양각색의 뜨로쯔끼주의와 같은, 혁명적ㆍ좌익적 언사로써 맑스주의로 위장한 악질적인 반동적 조류들이 유입되어 횡행했고,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의 소생ㆍ발전의 성과는 이 중도이폐로 노동자ㆍ민중 운동의 멍에로 전화되어 버렸다. 이른바 NLPD로의 노동자ㆍ민중 운동의 분열과 그 고착화로!

민족적 모순을 보다 중시하는 흐름과 계급적 모순을 보다 중시하는 흐름이 사상ㆍ이론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통일ㆍ통합되지 못한 채, 말하자면, 각자 그저 제 갈 길로 가고 있는 것,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서로 사실상 소 닭 보듯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과학적 인식의 미성숙에 기인하는 이 분열은 당연히 오늘날, 민족 모순과 관련해서도, 계급 모순과 관련해서도, 노동자ㆍ민중 운동과 그 투쟁의 일반적 지체ㆍ후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양대 진영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땅히 치열한 논쟁을 통해서 이 분열을 치유해야 할 터인데도, 서로 소 닭 보듯 사실상 어떤 논쟁도 벌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밖에서야 여러 가지로 평가ㆍ판단할 수 있겠지만, 우리 연구소 스스로는 이 양대 진영의 어느 쪽에도 고착되어 있지 않다고, 그리고 양대 진영 모두에 기본적으로 애정과 비판 의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바, 이번에 우리가 문제를 제기한 것도, 그것도 강하게 제기한 것도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였다. 때문에 이번에 우리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즉 분열되어 논쟁조차 실종된 양대 진영 간에 자그마한 논쟁이라도 조직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11) 특히 통일 운동에서 남다른 위치에 있는 범민련에서 서로의 견해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아 기고해 주신 것은 참으로 귀중하고 고마운 일이다.

 

양대 진영의 일반적 특징

스스로 자신을 평가ㆍ판단하는 것과 외부에서 평가ㆍ판단하는 것은 왕왕 다를 수 있어서, 노동자ㆍ민중 운동의 양대 진영의 특징에 관한 논의는, 오늘날에 와서는 NLPD라는 그 호칭에서부터, 자칫 당사자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최대한의 양해를 구하면서, 간단하게라도 지적ㆍ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소위 PD 진영은, 아주 복잡한 갈래ㆍ집단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심지어는 앞에서 언급한 이른바 좌익 공산주의나 각양각색의 뜨로쯔끼주의와 같은, 혁명적ㆍ좌익적 언사로써 맑스주의로 위장한 악질적인 반동적 조류들까지도 여기에 분류된다. 그런데 이렇게 부분적으로는 상호 적대적이기까지 한 이들 여러 갈래ㆍ집단들이 PD 진영이라는 하나의 범주 속에 묶이는 것은 그들 모두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계급 노선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계급 노선에서 찾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정체성이 과연 객관적으로도 노동자계급 노선에 있느냐 여부는 물론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이른바 좌익 공산주의나 각양각색의 뜨로쯔끼주의자들처럼,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에 적어도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으로 음으로 양으로 기여했고, 그 해체를 쌍수를 들어 환호한 자들을, 그리고 어렵게 어렵게 현존하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서 그토록 적대하는 자들을 노동자계급 노선 위에 서 있다고 할 수는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자신들은 노동자계급의 전위라고 왜장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혁명적ㆍ좌익적 언사로써 맑스주의로 위장한 악질적인 반동적 조류들을 제외하고 얘기하자면,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PD의 주류의 대중적 흐름은 노동자계급 노선을 표방하면서 대체로 경제주의ㆍ조합주의로, 따라서 개량주의로 전락해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임금인상 투쟁, 고용 사수ㆍ확보ㆍ확대 투쟁은 당연히 강고하게 수행되고 지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변혁의 전망과 방침 없이 투쟁이 단지 임금과 고용을 위한 것일 뿐이라면, 그것은, 주지하는 것처럼, 어디까지나 임금노예제를 전제한 경제주의ㆍ조합주의적 투쟁인 것이고, 따라서 그 노선은 개량주의다.

그런데 근래의 동향을 보면 소위 PD 진영의 흐름은 갈수록 그러한 경제주의ㆍ조합주의ㆍ개량주의에, 그것도 우리가 8월 14일에 발표한 예의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진하디진한 경제주의에 빠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경제주의에 빠져 가는 한, 신식민지적 종속의 극복이라는, 정치적 변혁을 수반할 민족적 과제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하여 진하디진한 경제주의 그것이 노동자ㆍ민중 운동의 분열을 계속 고착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NL 진영은, PD 쪽과 비교하면, 사실상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사상적ㆍ이념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통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내부에도 물론 여러 갈래의 흐름이 있고, 특히 변혁 지향적인 흐름과 체제 내적인 흐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하며,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히 변혁 지향적인 흐름들이다.

이들 조류는, 민족대단결에 기초한 반미 투쟁을 통한 통일을 주장하고 있으며, 저항(적) 민족주의 혹은 참된(참다운) 민족주의 혹은 근로민중의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어쩔 수 없이, 이 한국 사회는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여서,12)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민족 구성원들은 결코 대단결할 수 있는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라는 적대적인 관계가 그들 간의 주요하고도 규정적인 관계라고 하는 사실을 경시, 아니 사실은 무시하는 것으로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사실은 무시라고 하는 데에 대해서는 당연히 익히 들어 온 강력한 반론이 있을 것이다. 계급 문제를 무시하기는커녕, 결코 경시하고 있지도 않다고 말이다.

그러나 계급 문제를 무시하기는커녕, 결코 경시하고 있지도 않다고 스스로 믿고, 주장하는 것과, 제반 주장들, 기본 노선이 객관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왜 NL 동지들이 계급 문제를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가는 차츰 밝혀질 것이다.

 

연구소의 조국통일 운동, 이제 달라져야 한다가 제기한 문제들

지난 8월 14일의 2019 조국통일촉진대회에 부쳐 연구소가 발표한 짧은 글13)의 주장은 시종일관, 우리 민족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것, 계급적 이해로 적대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 (당연히 한국에서) 민족은 하나… 대단결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분단의 본질을 왜곡하고, 미제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면서 분단을 강요했고, 분단을 강제하고 있는 자들, 그 세력, 그 계급을 노동자ㆍ인민이 직시하지 못하도록 은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우리가 진정 조국통일을 촉진ㆍ달성하려면, 그러한 사실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미제에 부역하는 계급은 통일의 적이며, 노동자ㆍ인민의 단결 투쟁만이 미제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평화와 자주통일을 이뤄 내는 길이라는 것 등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제기를 강하게 각인하기 위해서, 계급적 분열ㆍ착취ㆍ적대라는,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온 민족이 하나되어 반미자주의 목소리를 하고 외치는 것은 기만이고, 좀 독하게 표현하면, 범죄입니다라는 표현까지도 덧붙였다. ― (이 표현에 대해서는 연구소 내부에도 좀 과한 표현이었다는 이견이 있었음을 여기에 밝혀 둔다.)

우리의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범민련이 그 기고문에서 고딕체로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글에서의 그에 해당하는 부분도 여기에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범민련]: 노사과연 운영위원회 명의의 글은 온 민족이 하나되자라는 것은 피착취ㆍ피억압자에게 착취자와 단결할 것을 요구하는 외침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14)

 

[연구소]: 온 민족이 하나되어 반미자주의 목소리를이라는 이 허망한 외침. 그것은, … 특히 노동자ㆍ민중의 투쟁을 분열시키는 주요 원인의 하나입니다. 온 민족이 하나되어라는, 현실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외침은, 외치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는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독일과 영국의 속담을 상기합시다―, 이 사회의 계급적 분열을 외면ㆍ부정하면서 계급 간의 화해(!), 계급 간의 단결(!)을 요구하는 외침이기 때문이고, 그리하여 피착취ㆍ피억업자에게 착취자와 단결할 것을 요구하는 외침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자본의 착취ㆍ억압에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으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도 없고, 수용해서도 안 되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15) (강조는, 인용하면서 추가.)

 

위와 같은 이의를 제기하면서 범민련은 아마 다음과 같은 자신들의 주장이 우리의 주장을 반박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범민련]: 민족주의는 민족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념이지만 여기에는 민족주의 운동의 주체와 방법론에 따라 부르주아 민족주의냐 근로민중의 민족주의냐로 크게 나뉩니다.

근로민중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주권을 중심으로 근로민중이 주체가 되어 근로민중의 자유와 권리와 해방을 지향하는 이념이자 행동 좌표입니다.

민족주의의 핵심은 민족자주 이념과 근로민중의 중심이라는 주체 문제이며, 이를 명확히 할 때만 비로소 사회 역사의 진보에 올바르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민족대단결은 민족자주에 동의하는 광범위한 애국애족 세력이 근로민중을 중심으로 사상과 정견과 소속을 초월하여 형성하는 가장 광범위한 민족적 단합을 말합니다.16)

 

우리는 계급 문제에서 근로대중을 탄압하는 정권 자본가와 손을 잡는 대단결이 아니라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단호히 거부하는 민족자주의 길에서,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길에서 손을 잡자는 것입니다.17)

 

그러나 근로민중이 주체, 근로민중의 중심이라는 주체 문제, 근로민중의 민족주의를 얘기하고 주창한다고 해서 계급적 착취와 억압, 그에 따른 적대 문제가 해소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니, 사실은 근로민중이 중심이 되는 민족주의라는 것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순전한 환상에 불과하다. 위 인용문 중 민족대단결은 민족자주에 동의하는 광범위한 애국애족 세력이 근로민중을 중심으로 사상과 정견과 소속을 초월하여 형성하는 가장 광범위한 민족적 단합(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이라는 문구 속에는 적대적 계급 간의 단결이라는 황당한 주장이 슬그머니 가려져 있다. 하지만, 몇 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각 계급 각 계층이 나서서 남북연대를 하고, 민족대단결의 주인으로 힘차게 설 때 … 하고, 그것이 금방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각 계급 속에는 당연히 (독점)자본가계급 포함되어 있고, 그렇다면 그들이 필연적으로 그 사회의 물질의 생산수단뿐 아니라 정신의 생산수단도 좌지우지할 터인데,18) 그들 자본가계급 중심이 아니라, 근로민중 중심의 민족주의? ―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급될 것이다.

 

현 시기 민족 문제의 특징

연구소의 문제제기도, 그것을 둘러싼 이견ㆍ논란도 결국은 현 시기 한국사회에서의 민족 문제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귀착된다. 여기에서는 먼저 민족 문제를 보는 기본적 관점ㆍ방법과, 현 시기 민족 문제의 일반적 특징에서부터 시작하자.

우선, 모든 경제ㆍ사회ㆍ정치ㆍ문화 현상들이 그렇듯이 현 시기 민족 문제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고, 역사적으로 발전ㆍ형성된 경제적ㆍ정치적ㆍ국제적 조건들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현 시기 민족 문제 그것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고찰되어야 한다.

참고로 언급하지만, 민족 그것의 형성 문제 역시 근ㆍ현대적 문제, 즉 자본주의 시대의 문제이지, 수천 년 역사를 관통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개의 민족주의 이론가들은 이른바 핏줄의 공통성을 민족의 제1의 특징으로 주장하면서, 우리 민족은 유럽과는 달리 단군 조선 시대 혹은 그 이전에 형성되었다고까지 주장한다.

우리 사회의 이들 민족주의 이론가들은, 대개는 쓰딸린이라는 이름은 거론도 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은 쓰딸린이 맑스주의와 민족 문제(1913)에서 열거했던 특징들을 슬그머니 가감하는 방식으로 민족 개념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쓰딸린의 정의를 보기로 하자. 그는 민족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은 후 이렇게 쓰고 있다:

 

민족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공동체, 즉 사람들의 일정한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인종적인 공동체도, 종족적인 공동체도 아니다. 오늘날의 이딸리아 민족은 …

… 민족이란 인종적인 공동체도, 종족적인 공동체도 아니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동체인 것이다. …

… 언어의 공통성은 민족의 한 가지 특성이다. …

그런데 예컨대 영국인과 미국인은 언어가 공통임에도 불구하고 왜 한 민족을 이루지 못하는가? …

… 지역의 공통성은 민족의 한 가지 특징이다.

… 경제생활의 공통성, 경제적 연계는 민족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

… 문화의 공통성에 표현되는 심리적 기질의 공통성은 민족의 한 가지 특징이다. …

민족이란 언어, 지역, 경제생활 그리고 문화의 공통성에 표현되는 심리적 기질 등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발생하였으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공한 공통성이다. …

[이상의: 인용자] 온갖 특성을 모두 구비하고 있을 때에만 민족이다.19)

 

이상이 쓰딸린의 민족 정의의 개요인데, 우리의 민족 이론가들은 대개 우선, 이 가운데 쓰딸린이 강조하고 있는 민족이란 인종적인 공동체도, 종족적인 공동체도 아니다라는 부분을 침묵으로 부정하면서, 핏줄의 공통성을 강조하고 있고, 두 번째로는 경제생활의 공통성, 경제적 연계를 민족의 특성으로부터 제거해 버리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민족 형성의 한 조건으로 국가를 놓고 있다.20)

여기는 민족의 개념 자체나 그 형성의 문제를 깊이 논의할 곳은 아니기 때문에21) 두 가지 질문만 던지는 것으로 그치자.

우선, 단군(족)의 자손으로서의 핏줄의 공통성? 과연 역사일까? 신화일까? 더구나 엄격한 신분제적 지배ㆍ예속 관계가 지배해 온 사회에서? 물론 귀천(貴賤) 간에 피섞음이 없었던 건 분명 아닐 터이지만! 그리고 그토록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사회에서? 그렇다고 원거리 통혼이 전혀 없었던 건 물론 아니겠지만!

그리고 국가 형성이 민족 형성의 조건? ― 이것은, 예컨대, 쓰딸린이 반증하고 있는 유럽과 러시아의 여러 민족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22) 국가를 형성하기 이전에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아시아, 그리고 특히 아프리카의 민족들에 대한 난폭한 이론적 폭력이 아닌가?23)

그건 그렇고, 그러면 현 시기 민족 문제의 일반적 특성은 무엇일까?

지역과 역사적 조건의 상이에 따른 예외들이 있지만, 세계적으로 현 시기 민족 문제의 일반적인 최대의 특징은, 그것이 신식민지주의적 종속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시기 한국의 민족 문제 역시 전형적인 신식민지주의적 종속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따라서 미제에의 이 신식민지주의적 종속의 극복이야말로 바로 통일의 관건, 아니, 사실상 그 조건이고 그 달성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규정된 현 시기 민족 문제로서의 신식민지주의적 종속의 극복을 위한 투쟁도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형태와 내용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신식민지주의적 지배 그것의 형태와 본질, 특징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신식민지주의, 그 형태와 특징, 그 본질과 그에 대한 투쟁

무엇보다도 신식민지주의적 지배의 형태 혹은 그 특징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토착 자본가계급에 의한 대리 지배이다.

그리고 이 대리 지배는 물론, 범민련도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미국은 신자유주의와 대북 적대와 패권 지배 유지를 위한 무소불위의 전가의 보도인 한미 동맹을 내세우고, 주한미군과 경제 종속과 정치 개입을 통해 이남은 미국의 승인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예속 상태24)의 그것이다.

그런데, 범민련 등, 민족대단결을 주장하는 동지들이 잊고 있는, 혹은 경시하고 있는 중요한 점은, 그 예속 상태의 대리 지배가 결코 미제에 의해서 저들 대리 지배자들에게 강제된 대리 지배가 아니라는 점, 그것은, 강제되기는커녕, 자발적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ㆍ적극적이며 필사적인 예속동맹적 대리 지배라는 점이다! ― 이것이야말로 핵심적으로 중요한 점이다!

범민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랜 군사 철권 독재 시기를 거쳐 등장한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은 … 6.15 공동 선언과 10.4 선언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내었습니다. … 촛불 항쟁에 힘입어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 군사 합의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남북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통일 문제에 역사적인 기여를 했지만 그 어떤 정권도 예외 없이 사대예속과 굴욕적인 한미 동맹에 포박되어 왔습니다.25)

 

그러나 그들은 결코 포박되어 온 것이 아니다! 만일 진실로 그렇게 포박되어 왔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순진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 어떤 정권도 예외 없이 사대예속과 굴욕적인 한미 동맹에 포박되어 온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어떤 정권도 예외 없이 사대예속과 굴욕적인 한미 동맹을 적극적ㆍ필사적으로 간청해 왔고, 필사적으로 그에 매달려 오고 있다!26) 그것이 진실이다!

자, 그렇다면, 노동자ㆍ민중은, 그토록 미제와의 예속동맹을 필사적으로 간청해 왔고 그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저들과 민족대단결해야 할까? 사생결단으로 투쟁해야 할까?

민족 문제를 고민하고, 노동자ㆍ민중의 입장에서 민족통일을 추구하는 사람치고, 저들과 민족대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할 이는 당연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범민련도 (그리고 필시 NL 동지들 대부분도 필시 그럴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민족대단결을 말하는 기준은 민족자주의 원칙입니다. 분단과 외세 지배의 역사를 도외시한 채 무턱대고 민족대단결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치는 민족대단결이자 외세를 몰아내는 민족대단결입니다.

우리는 계급 문제에서 근로대중을 탄압하는 정권 자본가와 손을 잡는 대단결이 아니라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단호히 거부하는 민족자주의 길에서,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길에서 손을 잡자는 것입니다. 외세를 몰아내지 않고서, 한미 동맹을 우선시하는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남북 관계의 진전도 이룰 수 없기에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을 이루어 외세를 몰아내는 데 힘을 합치자는 것입니다. 민족대결과 외세추종에 동조하는 정권 자본가와 결코 손을 잡을 수 없는 것이 민족대단결의 기본 원칙입니다.

… 문재인 정부가 끝내 민족자주와 민족공조에 등을 돌리고 미국의 패권적이고 민족분열적인 지배 정책의 편에 서게 된다면 과거 정권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27)

 

자, 그런데, 다르고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같은 대답이 결코 아니다.

연구소의 이번 문제제기에 대해서 좌익적 계급지상주의니, 계급환원론이니, 계급주의니 하고 광담패설하는 자들처럼 초과학적 혹은 절충주의적(折衷主義的) 사고를 추구하시는 분들은 분명 아닐 터인데도, 그리고 분명 계급 문제에서 근로대중을 탄압하는 운운하고 있는데도, 위 인용문들 속에는, 실례를 무릅쓰고 감히 말하자면, 계급 문제에 관한, 정치권력 따라서 국가 문제에 관한, 그리고 신식민지주의적 지배에 관한 과학적 이해가 사실상 전혀 없다!

먼저, 강조하며 인용했지만, 민족대결과 외세추종에 동조하는 정권 자본가와 결코 손을 잡을 수 없는 것이 민족대단결의 기본 원칙입니다?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 민족대결과 외세추종에 동조하는 자본가 정권이 아니라, 그러한 정권 자본가(!)인 것을! 정권 자본가!

정권 자본가? ― 이 신조어는 도대체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국가 권력의 계급성을, 즉 국가 권력은 지배계급의 지배 도구임을, 그리하여 자본주의 국가의 정권은 자본가계급의 정권임을 무언중에 부인하기 위해 창안된 신조어다! 이렇게 되면, 정치권력, 즉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으로서의 자본가계급의 도구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민족대결과 외세추종에 동조하는 한국의 정권, 바로 그 대리 권력도, 미제의 이익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토착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권력이 아니라, 그 자본가계급과는 다른 제3의 무엇, 정권 자본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민족대결과 외세추종도, 권력의 계급성, 그 계급적 이익에 따른 필연적ㆍ필사적 행위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한계, 예컨대, 제국주의에 의한 포박ㆍ강제를 못 이겨서이거나, 그 정권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자의적인 선택 때문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범민련이, 민족대단결의 개념이 몰계급적이고 몰역사적이며 비과학적이며 반민중적인 개념이라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라고 강변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사고의 표출이다.

이러한 사고는 과연 과학인가? 환상인가?

아무리 계급 운운하더라도, 그렇게 사고한다면, 결국 그것은 한낱 공문구일 뿐이지 않은가?

위 인용문에서 본 것처럼, 범민련이, 예컨대, 문재인 정부가 끝내 민족자주와 민족공조에 등을 돌리고 미국의 패권적이고 민족분열적인 지배 정책의 편에 서게 된다면 과거 정권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 운운하는 것도, 바로 그 정권의 민족대결과 외세추종 권력의 계급성에 따른 필연적ㆍ필사적 행위인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한계, 예컨대, 제국주의에 의한 포박ㆍ강제를 못 이겨서이거나, 자의적인 선택 때문인 것이라는 비과학적ㆍ환상적 사고의 표현일 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범민련은 남북이 분단되게 된 계기 그 자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한반도에서는 사회주의 남진을 봉쇄하려는 미국과 미일 제국주의의 대륙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소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우리 민족은 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정을 왜곡하고 좌우 극한 대립을 조작하여 이승만 단독 분단 정부를 만들어 놓은 미국이야말로 민족 분단의 결정적인 주범입니다.28)

 

그 자체로서 틀린 말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정을 왜곡하고 좌우 극한 대립을 조작하여 이승만 단독 분단 정부를 만들어 놓은 운운으로는 부족한, 하물며 이 서술조차 민족 내부의 계급적 분열과 대립을 적시하려기보다는 미국의 책임을 부각시키려는 것임에야 더구나 부족한 한 사실을 빠뜨리고 있다. 미제의 조작에 놀아났든, 그 조작에 공범이든, 아무튼 모쓰끄바 3상회의의 결정이 공표되기도 전에 조작된 오보를 통해 그 회의의 결정을 왜곡하고 좌우 극한 대립을 조작했던 바로 그 ≪동아일보≫ 1946년 8월 13일자는 군정청 여론국에서는 조선인민이 어떤 종류의 정부를 요망하는가를 규찰하기 위하야 30항목의 설문을 열거하고 여론을 조사하였는데 설문에 반영된 민의는 다음과 같다면서;

 

▲문3, 귀하의 찬성하는 것은 어느것입니까?

가, 자본주의 1,189인(14%) 나, 사회주의 6,037인(70%)

다, 공산주의 574인(7%) 라, 모릅니다 653인(8%)

 

라고 보도하고 있다. 분단이란, 바로 자본주의에 찬성한다는 14% 남짓한 인민(?)이 미제를 등에 업고 70% 혹은 77%에 이르는 인민의 의사를 억누른 결과라는 사실을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29) 이 누락이 의식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러한 누락의 밑바탕에는 현재 한국의 민족 문제, 즉 신식민지적 종속과 분단을 전적으로 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려는 사고, 즉 민족 내부의 분열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려는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는 분명 순진한, 그러나 중대한 오류다.

 

신식민지주의의 역사성ㆍ필연성

그러면,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주의적 지배와 토착 대리 권력의 자발적ㆍ적극적ㆍ필사적 예속동맹은 우연이나 자의적ㆍ선택적, 혹은 편의주의적인 형태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것은 두 가지 역사적 이유ㆍ원인 때문에 필연적이다.

무엇보다도 첫째로는, 그리고 제국주의 측의 입장에서는, 식민지 피지배 인민, 즉 노동자ㆍ농민계급의 민족적 저항ㆍ투쟁,민족해방 투쟁이 구식민지 체제의 존속, 즉 직접 지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토착 자본가계급으로 구성된 대리 정권을 내세워 (신)식민지 피억압ㆍ피착취 노동자ㆍ인민을 기만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식민지에서의 자본주의의 발전과 지주-소작 관계의 전개ㆍ발전이 그 경제적 기초인데, 식민지 민족해방 운동에 대한 사회주의 러시아와 코민테른 등의 물심양면의 지지ㆍ지원이 막대한 정치적 역할을 했음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식민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인정한다고 해서, 이 인정 그것을,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하는 계급적 이해의 차이, 착취와 억압, 피착취 노동자ㆍ인민의 빈곤과 고통에 눈감으면서 자본주의의 발전ㆍ성장을 그 자체로서 찬양하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과 혼동해서는 물론 안 된다.

둘째로는, 구식민지 체제의 붕괴와 그 신식민지주의적 지배로의 전환을 불가피하게 했던 바로 같은 원인ㆍ이유로, 즉 식민지에서의 자본주의의 성장과 소농민에 대한 지주-소작 관계의 전개 등 여러 형태의 착취의 강화로 계급적 적대ㆍ대립이 격화되었고, 바로 이 때문에 이른바 민족자본이라고 불리는 토착 자본가계급은 이제 제국주의의 뒷받침 없이는 착취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 이것이 바로 토착 자본가계급이 자발적ㆍ적극적ㆍ필사적으로 제국주의에 예속동맹을 간청하고, 그에 매달리는 이유이다.

같은 민족인 수십만의 노동자ㆍ인민을 좌익빨갱이로 몰아 학살하면서 미 제국주의에 매달려 온, 이승만 정권 이래의 저 우익ㆍ극우의 행태ㆍ동향을 이렇게 말고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역사적ㆍ구체적 배경ㆍ원인이 그러한데도, 그러한 자본가계급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대단결한다?! 그것은 현실의 계급적 적대를 무시한 환상일 뿐이다!

토착 자본이 애초에 피억압 민족의 대표로, 즉 이른바 민족자본으로 나서는 것은, 다름 아니라, 종주국 혹은 본국의 자본과 차별받지 않는 착취의 자유를 획득하려는 욕망에서였다. 그러나 계급적 적대ㆍ대립이 격화되면, 이제 차별 따위는 기꺼이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착취의 자유 그 자체가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제 후기로 갈수록 많은 지식인들이 변절하고, 친일 자본가들이 늘어나, 심지어 박흥식이나 가네타 류슈(金田龍周, [무생이 애비])처럼 일제에 군용기를 헌납하는 자들까지 나타나는 것도 결코 우연이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의 필연적 표현이었다.

더구나 제국주의는 제국주의대로, 토착 자본가계급을 적극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았던가?

한편, 앞에서 본 것처럼, 범민련은 통일과 변혁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이면서 동시에 독자성을 갖기 때문에 이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면서 공동의 실천으로 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미 제국주의의 구체적인 지배 형태, 즉 신식민지주의적 지배와 그 핵심적 특징인 토착 자본가계급의 자발적ㆍ필사적 예속동맹과 그 역사적 필연성에 대한 명확한 분석ㆍ인식 없이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통일과 변혁을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저들의 동향을, 계급적 이해에 따른 필연적인 계급적 동향으로 파악하는 대신에, 예의 정권 자본가라든가, 사대매국노, 악질지주, 반동관료 등을 제외하고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은 반일의 깃발 아래 모두 모이자는 것이 일제 강점기의 민족대단결이었습니다라는 식으로 파악하는 것도 그 변증법적으로 이해의 결여 때문이라고밖에 나로서는 달리 이해할 수 없다.

 

이른바 저항 민족주의참된 민족주의근로민중의 민족주의에 대하여

한편, NL 동지들은 공공연하게 민족주의를 주창한다.

서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의 침략적 민족주의, 혹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변형)와는 다른 저항 민족주의참된 민족주의근로민중의 민족주의라며, 그 정당성을 주장한다. 제국주의의 지배ㆍ억압ㆍ착취에 대한 저항이요 투쟁이기 때문에 일견 타당한 듯이 들린다.

그러나 서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의 침략적 민족주의, 혹은 부르주아 민족주의도, 애초에는 저항 민족주의로 출발했다는 것을 잊거나, 짐짓 경시하고 있다. 봉건제에 대한 저항이냐, 제국주의의 민족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민족대단결론자들이 주장하는 저항 민족주의가 침략적 민족주의, 혹은 약탈적 민족주의로 발전하는 것을 결코 막을 수가 없다. 민족대단결론자들이 주장하는 저항 민족주의 역시, 그들의 주관이나 그 지향과 상관없이, 사실은 부르주아 민족주의, 자본가계급의 민족주의이기 때문이고, 부르주아, 즉 자본가ㆍ자본가계급은, 맑스가 누차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인격화된 자본일 뿐이어서, 자본의 축적욕ㆍ축적충동이 민족적 이익이라는 천하의 대의 하에 그들을 침략적ㆍ약탈적으로 몰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세계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한국의 자본가계급의 축적욕 역시, 물론 미제의 자발적 침략예속동맹 세력이 되어, 비엣남(월남)에서 이미 엄청난 잔학 행위들을 저질렀고, 오늘날에도 특히 동남아 각국의 노동자들을, 우리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동남아 현지에서도 가혹하게 착취하고 있다. 이른바 저항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혹시 이를 짐짓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가?

1997년 말이든가 1998년 초든가 ≪한겨레 21≫의 어느 호에 쓴 바 있지만, 그러니까 이미 20년도 더 전의 일인데, 필리핀에서 열린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어느 국제 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하자마자 맨 처음 들어야 했던 소리는, 동남아 여러 나라의 노동자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오는, 코리안 인베스터스 아 브루탈!(Korean investors are brutal!), 즉 한국의 투자자들은 잔혹하다는 외침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저항 민족주의 타령이라니!

이른바 저항적 민족주의 혹은 근로민중의 민족주의의 순결성ㆍ진보성을 믿고 강조하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도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19세기에는 민족주의와 진보적 이데올로기들 간의 유익한 교감(fruitful communion)을 볼 수 있는데, 그때에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폭정 및 불의에 대한 투쟁과 결합되어 있었고, 때로는 (이딸리아의 통일 운동[Risorgimento]에 대해서만 말하더라도, 마치니[Mazzini]와 가리발디[Garibaldi])의 사상과 행동에서처럼) 심지어 보편주의와도 결합되어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이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 주었는데, 그때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은 전쟁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하여 몇몇 정당들은 계속 계급적 국제주의를 고수했고, 다른 몇몇 정당들은 [애국적 동기에서: 인용자] 전쟁 참가를 지지했다. 비록 그들은 사회애국주의적 관점에서 그렇게 했지만, 그들은 결국 그들의 계급적 적(敵) 정부들과 동일한 제국주의적 목표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Even if they did so from a social patriotic perspective, they ended up sharing the same imperial aims of their class-enemy governments.)30)

 

비록 그들은 사회애국주의적 관점에서 그렇게 했지만, 그들은 결국 그들의 계급적 적(敵) 정부들과 동일한 제국주의적 목표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 다름 아니라, 바로 자본과 함께하는 민족주의의 필연적 경로ㆍ귀착점, 아니 운명이다!

백보 양보하여, 범민련의 민족주의는 민족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념이지만… 운운처럼, 구태여 민족주의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오직 무계급 사회의 민족주의만이 침략적ㆍ약탈적이지 않고, 인류가 공영하는 민족주의일 수 있을 것이다.31) 그러나 한국 사회는, 무계급 사회가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저항참된참다운근로민중(의) 따위의 수식어를 붙여 보아도 그것은, 실체를 은폐하는 데에 기여할 뿐, 실제로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이고, 따라서 팽창적, 따라서 약탈적일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라는 같은 말이라도 무계급 사회에서의 의미와 계급 사회에서의 그것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참된 민족주의근로민중의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저항 민족주의부르주아 민족주의라고 규정하고, 그 침략적ㆍ약탈적 민족주의로 발전은 필연적이라고 하는 것은 오해ㆍ곡해를 넘어, 중상모략이며, 저주라고?

그런데, 예컨대, 범민련은 이렇게 쓰고 있다:

 

각 계급 각 계층이 나서서 남북연대를 하고, 민족대단결의 주인으로 힘차게 설 때 민족적 이익을 최우선시해 나갈 수 있습니다.32)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각 계급에서 설마 자본가계급을 제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 그렇다면,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를 상정(想定)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역시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을 지배하는 계급은 누구인가? 바로 부르주아지다! 따라서 그 사회의 민족주의는, 아무리 참된이니, 근로민중의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 보아도 부르주아 민족주의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음과 같은 발언 역시, 각 계급 각 계층 … 민족대단결이라는 말로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민족자주 역량이란 것을 상정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 민족주의란 것이 결국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임을 입증하고 있다:

 

민족자주 역량이 제대로 역할하지 못한다면 자본가들은 남북 관계 개선을 이윤 추구의 기회로만 활용하게 되고, 친미ㆍ친일 세력들의 반시대적 준동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인용자)33)

 

그런데 민족자주 역량이 제대로 역할하면, 자본가들은 남북 관계 개선을 이윤 추구의 기회로만 활용하지 않고, 달리 활용한다?자본에 대한 이보다 더한 비과학ㆍ환상이 달리 있겠는가?

게다가, 남북연대를 전제하는 각 계급 각 계층의 민족대단결이야 성질상 절대로 불가능하지만, 어쩌다가 어떤 형태인가의 각 계급 각 계층의 민족대단결이 형성된다고 가정해 보자. 독점자본주의인 이 한국 사회에서 말이다!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고전적 파씨즘 바로 그것 아닌가? 끔찍하지 않은가?

 

통일과 변혁, 혹은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관계

여기에서 특별히 누구, 누구 하고 호명할 필요도 없이 여러 사람들이, 민족 모순의 해결이 우선이니, 계급 모순의 해결이 우선이니 하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현 시기 민족 문제의 역사적 형태와 본질, 그 특수성 등에 대한 위에서의 논의에 동의한다면, 그러한 선ㆍ후 논의가 얼마나 부질없고 관념적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질없고 관념적인 논의 중에서 여기에서는 4.27시대연구원 박기민 연구위원이 ≪민플러스≫에 연재 중인 왜 다시 민족주의인가네 번째 글, 마르크스, 엥겔스 초기의 민족문제 ―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 선언』에서 주장한 바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려 한다. 특별히 그의 주장에 대해서 논하는 이유는, 그 글에서 그는 엥엘스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리 말하지만, 여기에서 맑스ㆍ엥엘스의 민족 및 민족주의 이론에 대한 박기민 연구위원의 논의에 대해서 보다 더 깊게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네 번째 글과 그 앞 세 번째 글인 마르크스ㆍ엥겔스의 민족, 민족주의 이론을 합하더라도 불과 몇 페이지 안 되는 글이면서도, 사실상 맑스와 엥엘스의 이론 전반에 대한 종횡무진 해박하기 그지없는 지식을 총동원, 그들의 민족 및 민족주의 이론에 대해서 너무나도 횡설수설하고 있어서, 그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하기 위해서는 수백 페이지의 지면도 어쩌면 충분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는 민족 모순 해결과 계급 모순 해결의 선후 문제를 논하는 직접적 부분, 그러니까 민족 및 민족주의의 문제에 관한 맑스ㆍ엥엘스의 이론에 대한 그의 논의의, 말하자면, 빙산의 일각이나 될까 말까 한 부분에 대해서만 간단히 논급하기로 하는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지난 1980년대나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한국의 일부 계급주의자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왜곡하며 민족해방문제의 제1차적 의의를 반대하며 노동계급 해방부터 주장합니다. 한국의 신식민지 현실에서는 민족해방 없는 노동계급해방이란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혹자들은 민족해방과 노동계급해방은 동시적 문제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틀린 입장입니다. 민족해방이 되면 자연스럽게 노동계급해방, 인간해방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은 미국에 대한 정치경제군사적 예속 타파가 제1의 해결과제라는 것입니다.

 

일부 계급주의자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왜곡하며 민족해방문제의 제1차적 의의를 반대하며 노동계급 해방부터 주장? ― 물론 그런 사람들이 그야말로 일부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사회과학 압살의 후과(後果)로!

그건 그렇고 박기민 연구위원이 저렇게 주장하는 직접적 전거는 이렇다:

 

… 엥겔스는 1882년 카우츠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역사상 민족독립을 확보하지 못한 민족은 모든 내적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 운동은 독립된 민족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엥겔스의 민족주의 문제를 현대적 의미로 살리면 한국의 모순 중에서 민족모순(분단모순), 계급모순을 어떻게 볼 것이냐? 문제에 있어서 엥겔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운동은 독립된 민족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되니,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으로 독립하지 않으면 노동해방 운동이란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브라보! 엥겔스의 민족주의 문제를 현대적 의미로 살린 완벽한 논증이다!

그런데, 예컨대, 한국에서 군대는 대개 남자들이 간다. 이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한국에서 군대는 남자들이 간다더라고 해 놓고는, 봐라, 한국에서 군대는 남자들만 가잖아! 하고 왜장치면, 옳은 말인가, 아닌가?

박기민 연구위원이 강력한 전거로 제시하는 엥엘스의 발언,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 운동은 독립된 민족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본래 Eine internationale Bewegung des Proletariats ist überhaupt nur möglich zwischen selbstständigen Nationen34),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 운동은 대개 독립된 민족들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이다!

논증하기 위한 전거 인용은 모름지기 정직해야 한다!

이 발언에 앞서 엥엘스는, 박 연구위원도 대략 인용하고 있는 바이지만, 그런데 국민적 독립이 없는 한, 하나의 대(大)민족에게 있어서는 어떤 내부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조차 역사적으로 불가능합니다(Nun ist es für ein großes Volk geschichtlich unmöglich, irgendwelche innere Fragen auch nur ernsthaft zu diskutieren, solange die nationale Unabhängigkeit fehlt)35)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독일이나 이딸리아 등을 예로 들고 있는데, 이들 두 국가는 난립한 소국가들의 통일 문제 등 그 외의 복잡한 요소들을 안고 있었으므로 편의상 여기에서는, 그들 국가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고, 엥엘스가 마지막으로 예로 들고 있는 헝가리에 대해서만 언급하자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860년 이후에야 헝가리는 근대적인 운동―상층의 투기, 하층의 사회주의―에 끌려들어 왔습니다.36)

 

자, 이 편지는 1882년 2월 7일자의 것이다. 그런데 1860년 이후 그때까지 헝가리는 과연 독립 국가였는가? 헝가리 민족은 독립을 성취했었는가?

아니다. 1860년에 민족 운동의 부분적인 승리로, 독립을 선언했으나 결국 패배했던 1848년 당시의 헌법의 일부를 반환받고, 1867년에야 자치 왕국의 지위를 획득했는데, 그 자치는 여전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하의 자치 왕국이었다.37) 그러나 1860년 및 1867년의 사태는 헝가리에서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과 강화되고 있던 노동 운동을 위한 기초였다.38)

그렇다면, 엥엘스는 앞뒤 안 맞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언뜻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엥엘스는, 박기민 연구위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는, 대개 혹은 대체로 혹은 일반적으로는이라는 말, 즉 überhaupt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 즉, 일반적으로는, 혹은 대개, 대체로 그렇지만, 기타의 조건들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면, 예컨대, 1860년 이후의 헝가리처럼 자치를 획득, 자본주의와 노동 운동이 발전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뜻이다.

박기민 연구위원이 진실로 엥겔스의 민족주의 문제를 현대적 의미로 살리려 했다면, 그는, 엥엘스의 발언을 역사적 맥락ㆍ상황과 분리하여 이해하고 들이대면서, 그것도 편리하게 인용하며 들이대면서, 엥겔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운동은 독립된 민족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되니,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으로 독립하지 않으면 노동해방 운동이란 것은 의미가 없다거나, 더구나 혹자들은 민족해방과 노동계급해방은 동시적 문제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틀린 입장이며, 민족해방이 되면 자연스럽게 노동계급해방, 인간해방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따위의 소리를 해대는 대신에, 달리 행동했어야 했다. 즉 천하의 득도자가 맑스ㆍ엥엘스를 오감(烏瞰)하는 듯한 유유(悠悠)한 태도를 취하는 대신에 먼저 엥엘스를 그 자체로서, 즉 역사적 맥락과 조건과의 관계 속에서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했고, 현 시기 민족 문제를, 즉 신식민지주의적 지배의 특징ㆍ형태ㆍ본질, 그리고 그 필연성역사적ㆍ구체적으로 탐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심오한 민족ㆍ민족주의 문제의 전문가였던 것 같다.

 

부족한 글이지만, 노동자ㆍ민중 운동의 대분열, 양 편향을 지양하는 데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더 이상의 보람이 없을 것이다.

노사과연

 

 


 

1)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운영위원회, “조국통일 운동, 이제 달라져야 한다”, ≪정세와 노동≫ 제154호(2019년 9월), pp. 29-33.

 

2) 범민련,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조국통일과 사회진보에 기여하는 민족대단결”, ≪정세와 노동≫ 제155호(2019년 10월), pp. 68-75.

 

3) 특히 이북의 사회주의 체제를 압살하려는 미 제국주의의 집요한 야욕은 이 땅에 끊임없이 엄중한 긴장과 전쟁의 위험을 조성해 왔고, 핵 무력을 앞세운 이 전쟁의 위험은 역설적이게도 ‘핵 대(對) 핵’이라는 구도에 의하지 않고는 봉쇄할 수도, 최소화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된 후 북이 핵무장을 서두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급기야 1950년 11월 30일 핵무기 사용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1958년 주한미군의 전술 핵무기 배치 이후 한반도는 단 한시도 미국의 핵전쟁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범민련, 같은 글, p. 72.)

 

4) ‘민족주의 진영’이라고 규정하는 데에 대해서는 그 내부의 일부에서 거부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 ‘민족주의’가 ―물론 서유럽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주장과 함께― 고창(高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에 대한 내부에서의 비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간단히 언급할 것이다.

 

5) 범민련, 앞의 글, pp. 74-75.

 

6) 채만수, “≪자본론≫과 현대 자본주의”, ≪노동사회과학 제11호: 맑스 탄생 200주년, 그리고 한국의 맑스주의≫, 노사과연, 2018, pp. 17-18.

 

7) 전우용 역사학자, “불온서적”, ≪한겨레≫, 2018. 9. 20.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2834.html>

 

8) 박정희 정권이라고 하면, 특히 5ㆍ16 쿠데타의 핵심이자 중앙정보부의 창설자(따라서 미 CIA의 핵심 앞잡이)이고,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의 기둥이었으면서도, 박정희 정권의 파탄 이후에도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치적 영화를 누리다가 타계하신, 저 징그럽도록 노회한 김종필을 결코 빼놓을 수 없으나, 그에 대한 것들은 정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기록을 기대해 보자.

 

9) 사실은, 자각.

 

10) 여기에서 “사회과학이 대중적으로 … 소생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신식민지 자유민주주의의 억압으로 사회과학이 압살되었지만, 그것은 대중적 차원, 대중적 규모에서의 일이었고, 사실 ‘지하’에서는 사회과학이 당연히 면면히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1) 물론, “좌익적 계급지상주의”니, “계급주의” 혹은 “계급환원론”이니 하는 따위의, 종파주의적 동기와 악의에서의 광담패설도 없진 않지만 말이다.

 

12) 한때, “*** 반봉건 사회”니, “*** 반자본주의 사회”니 하는 주장들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황당한 주장들은 청산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13) 운영위원회, 앞의 글.

 

14) 범민련, 앞의 글, p. 72.

 

15) 운영위원회, 앞의 글, pp. 31-32.

 

16) 범민련, 앞의 글, p. 72.

 

17) 같은 글, p. 73.

 

18) K. 맑스ㆍF. 엥엘스, ≪독일 이데올로기≫, MEW, Bd. 3, S. 46.; 최인호 역, ≪독일 이데올로기≫(≪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박종철출판사, 2008(초판 제15쇄), p. 226.

 

19) ≪쓰딸린 선집≫ 제1권, 학우서방, pp. 84-89.; J. Stalin Works, Vol. 2, 1946, pp. 303-308.

 

20) 예컨대, 박기민, “왜 다시 민족주인인가”(1) …,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190&view_type=sm>; 혹은 박○○, “민족과 민족주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등 참조.

 

21) 사실 이들 문제 역시 민족 문제에 대한 오늘날의 주관적ㆍ소망적 이해와 깊이 연관되어 있지만, 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광범한 지면이 필요하다.

 

22) J. 쓰딸린, “민족 문제와 레닌주의”, ≪쓰딸린 선집≫ 제2권, 학우서방, pp. 522.; ≪맑스-레닌주의 민족운동론≫, 벼리, 1989, pp. 363-364.; J. Stalin Works, Vol. 11, pp. 349-350.; J. Stalin Werke, Bd. 11, 1954, SS. 298-300 등 참조.

 

23) “핏줄의 공통성”이니 “단군 조선”이니 하면서 우리의 민족 형성을 수천 년 전으로 소급하는 분들을 위해서 여기에 쓰딸린의 발언을 참고로 적어 둔다: “당연히 민족의 요소들―언어ㆍ지역ㆍ공통의 문화 등―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 이전에도 이미 서서히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 요소들은 맹아 상태에 있었고, 장래의 유리한 조건들 하에서 민족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기껏해야 잠재적인 것이었다. 그 국민적 시장과 더불어 그리고 그 경제적ㆍ문화적 중심들과 더불어 자본주의가 발흥하는 시기에야 비로소 그 잠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 선집≫ 제2권, p. 524.; ≪… 민족운동론≫, p. 364.; … Works, Vol. 11, p. 351.; … Werke, Bd. 11, 1954, S. 301.)

 

24) 범민련, 앞의 글, p. 71. 다만 이 경우 “신자유주의”는 신식민지주의적 지배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신식민지주의는 신자유주의 이전부터의 식민지 지배 형태이기 때문이다.

 

25) 같은 글, pp. 72-73.

 

26)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단언을 넘어 논증이 필요할 것이다. 잠시 뒤 “신식민지주의의 역사성ㆍ필연성”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27) 범민련, 앞의 글, pp. 73-74.

 

28) 같은 글, p. 70.

 

29) 한국경제학회 회장님이시자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님이시며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이신 조장옥이란 자는 흥미롭게도 이렇게 쓰고 있다: “1946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군정청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가 사회주의를 찬성했고, 자본주의 14%, 공산주의 7%, 모름이 8%로 나타났다. 즉 당시의 대중은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를 압도적으로 선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신념과 지도력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선택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아니 할 수 없다.”(“[동아광장/조장옥]나라에 목표가 없다”, ≪동아일보≫(인터넷판), 2016. 8. 19.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60819/79849777/1>). 그리고 이를 받아, ≪한겨레신문≫을 “극좌파신문”으로 규정할 정도로 극우사시(極右斜視)인, 기독교계로 보이는 한 블로그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우매한 백성들의 여론대로 공산주의(사회주의) 정부가 세워졌다고 가정해보면, 아찔하다.”(“해방 1년 후 여론조사, 국민들 77% 사회주의[공산주의] 찬성”, <https://m.blog.naver.com/dreamteller/221049872942>[2017. 7. 12.])(강조는 인용자)라고 쓰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답게 저들의 눈에 “백성”ㆍ인민ㆍ민중은 역시 우매한 개돼지인 것이다! 그 개돼지들이 얼마나 우매했던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예의 여론조사의 몇 개 항목과 그 결과를 예시하자면: “▲문1, 일신상의 행복을 위하야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가, 생활안정을 실현할 기회 3,473인(41%) 나, 정치적 자유 4,669인(55%) 다, 모릅니다 311인(4%) ▲문2, 귀하께서 찬성하시는 일반적 정치형태는 어느것입니까? 가, 개인독재(민의와는 무관계) 219인(3%) 나, 수(數[?])인독재(민의와는 무관계) 323인(4%) 다, 계급독재(타계급의 의사와는 무관계) 237인(3% [보도원문은 30%]) 라, 대중정치(대의정치) 7,221인(85%) 마, 모릅니다 453인(5%) ▲문4, 귀하는 조선정부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 시민의 의무, 정부의 책임과 구조 등을 규정한 성문법에 의거하여야 하겟다고 생각합니까? 가, 예, 7,358인(87%) 다,[보도원문대로!] 아니요, 243인(3% [보도원문은 30%]) 라, 모릅니다, 853인(10%) ▲문5, 만일 ‘예’라면 이 헌법 작성시기는 언제야 하겟습니까 가, 지금 1,858인(27%) 나, 전조선이 통일된 때 5,232인(71%) 다, 모릅니다 269인(2%) ▲문6, 이 헌법은 하자(何者, [누가: 인용자])가 작성할 것입니까 가, 민선헌법회의 5,907인(70%) 나, 중요 정당이 선출한 헌법위원회 1,134인(13%) 다, 미소공위가 선출한 헌법위원회 610인(7%) 라, 미군정이 선출한 헌법위원회 159인(2%) 마, 미소공위 145인(2%) 바, 미국정부 49인(1%) 사, 모릅니다 447인(5%) ▲문7, 조선의 최고법이 되기 전에 이 헌법은 누가 통과시켜야 하겟다고 생각합니까 가, 이 헌법을 작성하는 국체(國體) 926인(11%) 나, 조선인민 6,685인(80%) 다, 미소공위 239인(3%) 라, 기타 155인(2%) 마, 모릅니다 347인(4%)” 등등. ― 이 얼마나 우매한 개돼지들의 여론인가! 더구나 ‘헌법을 누가 작성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미군정이 선출한 헌법위원회(2%)’나 ‘미국정부(1%)’가 작성해야 한다는 답변이, 그 둘을 합해도, 고작 3%밖에 안 되다니!

 

30) 야코포 쿠스토디(Jacopo Custodi, Pompeu Fabra 대학[에스빠냐, 바르쎌로나] 교수), “라틴 아메리카와 남부 유럽의 좌익 포퓰리즘: 사회애국주의의 새로운 형태인가, 지역 통합의 좌익적 노선인가?(Left-wing populism in Latin America and Sourthern Europe: a new form of social patriotism or a left path to regional integration?)”. <https://www.academia.edu/31058031/Left-wing_populism_in_Latin_America_and_Southern_Europe_a_new_form_of_social_patriotism_or_a_left_path_to_regional_integration>

 

31) ‘민족주의’가 요구되는 무계급 사회는 물론 제국주의에 포위되어 끊임없이 그 위협을 받고 있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단계, 특수한 조건의 무계급 사회이다!

 

32) 범민련, 앞의 글, p. 74.

 

33) 같은 곳.

 

34) Marx Engels Werke, Bd. 35, S. 270.

 

35) 같은 책, S. 269.

 

36) 같은 곳.

 

37) 헝가리가 독립한 것은 제1차 대전에서의 패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1918년 10월에 이르러서였다.

 

38) MEW 편집자 주해(注解), MEW, Bd. 35, S. 510.

 

채만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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