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 비정규직 노동 운동―비정규직 철폐를 넘어 고용 없는 세상으로

 

 

채만수 | 소장

 

 

* 이 글은 사월혁명회가 간행하는 ≪사월혁명회보≫ 제132호(2019년 8월)에 실렸던 글입니다.

 

 

I

 

지난 7월 3일부터 5일에 걸쳐 진행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과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를 무릅쓰고 전개하고 있는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라는 허울뿐인 정규직화에 대한 반대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되고 있다. 그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꾸준히 전개되어 왔지만, 대개가 개별 사업장별로 고립되어 전개되어, 사회적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특히 이번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은, 민주노총 차원의 지지ㆍ지원하에 수만 명의 규모로 전개되었다는 면에서도, 급식 중단이라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적지 않은 학생ㆍ학부모들이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급식 중단이라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사회에서 기레기라는 영광스러운 이름하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극우 언론의 적대적 선전 세례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학생ㆍ학부모들이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은, 가까이에서 지켜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ㆍ노동 조건들이 얼마나 열악했는가를 간접적으로, 그러나 생생히 증언하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반의 열악한 노동 조건들, 차별들이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폭로될 때, 그 투쟁이 널리 사회적 지지ㆍ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민주노총의 7ㆍ3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으로 그 문을 열었다는 것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민주노총을 대기업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해 온 극우 언론, 극우 논객들, 극우 정객들의 중상모략에 대한 통쾌한 일격이다. 그렇다고 해서 극우 언론ㆍ극우 논객들ㆍ극우 정객들이 예의 그 파렴치한 주둥이들을 닫을 리야 결코 없지만 말이다.

1,500명의 대량 해고를 무릅쓰고 싸우고 있는 한국도로공사 통행료 수납 노동자들의 장기 투쟁도 각별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라는 허울만의 정규직화를 사회에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통령 문재인이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특별히 인천공항공사를 방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던 다짐이 사실은 한 토막의 정치쑈에 불과했다는 것을 여실히 폭로하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사실, 1천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저임금을 포함한 그들의 형편없는 노동 조건들을 고려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쟁이 이제야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이러한 투쟁들은, 당연히 특히 최근 20여 년 사이에 량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들, 열악한 삶의 조건들에 의해 강요되고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선진 노동자들의 꾸준한 노력, 치열한 조직화의 성과이자 정규직ㆍ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과 계급 의식의 발전의 표현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규직ㆍ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가능한 모든 지지와 연대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II

 

그런데, 노동자들의 이러한 비정규직 철폐 투쟁, 차별 철폐 투쟁은 과연 차별을, 나아가서 비정규직 자체를 철폐하게 될 것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모든 지지와 연대를 아끼지 않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체제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그것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비정규직과 그에 대한 차별은 결코 철폐되지 않는다는, 모순된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투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그 차별은 물론 약간은 완화되겠지만 말이다.

우선, 비정규직과 그에 따른 차별의 확대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비정규직이 크게 증대하고, 그리하여 비정규직 그 자체와 그에 따른 차별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있는 것은 결코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생산이 자본주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국가들에서의 문제인바, 이는 비정규직의 확대나 그 차별이 사실은 자본가들 사이에 유행하는 모종의 자의(恣意)나 음모, 혹은 어느 정부, 어느 국가의 자의적 정책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가란 본질적으로 의지와 의식이 부여된, 인격화된 자본1)에 불과하고, 부르주아 국가란 그들 자본가들의 국가에 불과해서, 비정규직의 확대와 차별의 심화는 현 시기에 자본이 처해 있고, 앞으로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즉 격렬하기 그지없는 경쟁, 세계적 규모에서의 자본의 생사를 건 경쟁의 반영이고, 또 그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2)

실제로 한국 경제에서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고, 또한 국가가 비정규직 확대를 위한 법률적 여건의 정비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도, 한국의 (독점)자본들이 개발도상국(의 자본)이 일정하게 누리던 보호 관세 등의 보호 장치 없이 세계 시장의 경쟁전에 뛰어들 수밖에 없게 된 1990년대 중반 이후였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확립과 1997년 가을에 폭발한, 세칭 IMF 사태로 불리는 외환 위기, 심각한 공황은 그 주요한 계기였다.

곁가지이긴 해도, 자본과 정부의 음흉한 기획에 놀아나, 혹은 호응하여 1996년 하반기에 이 대한미국의 소위 경제학자들과 언론이 요란하게 연출했던 광대극 경제 위기의 한 토막을 소개해 보자.

당시는, 격화되는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전에 대비하기 위해 그해 5월부터 대통령 김영삼이 직접 나서서 신노사관계 구상이니 노사관계개혁위원회니 하면서, 노동자계급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법률적 제도 정비를 서두르던 시기였다. 정부와 자본이 당시 한국 경제의 상황을 경제 위기, 즉 공황이라고 규정했던 것도 물론 그러한 제도 정비를 관철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저들이 그렇게 당시를 경제 위기라고 규정하고 나서자, 이른바 진보ㆍ보수 가릴 것 없이 기라성 같은 경제학자님들과 언론이 앞다퉈 어릿광대춤을 추고 나섰다. 그 몇몇을 소개하자면,

 

1) 지표 경기, 즉 통계가 보여 주는 여러 지표에 의하면 경제 위기라고 할 수 없지만, 이른바 체감 경기(體感景氣)에 의하면 경제 위기임에 틀림없다는 주장. 즉, 체감 경기에 기초한 위기설 ― 한국은행장을 지낸 박승 당시 중앙대학교 경제학 교수. (과학은 감각이다!)

2) 연율 6% 내지 7%의 비율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 같으면 경제 위기가 아니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경우 고율 성장 체질이라서, 빠른 속도로 달리던 자전거가 천천히 달리면 넘어지는 것처럼, 연율 6% 내외의 성장도 한국 자본주의의 경우에는 경제 위기라는 주장. 즉,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 전복 위기설 ― 진보 장상환 교수.

3)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 주요 산업부문이 모두 포스트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으로 생산방법을 바꾸었으나, 한국 경제의 경우 조선업 등 주요 산업부문이 아직도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을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 즉, 한국에서는 대형 선박도 포드주의적으로 건조되고 있다는, 포스트 포드주의로의 이행지체설 ― ≪자본론≫ 번역자, 강신준 교수.

4) ≪한겨레≫(1997. 11. 26. 지금은 어느 대학원의 원장님으로 계시는, 이봉수 당시 경제부장)를 포함한 언론의, 말하자면, 과(過)소비, 혹은 국민들의 사치ㆍ방탕 경제 위기 유발론. ― (공황의 원인은 과잉소비다!)

5) 노동 운동권이나 진보적 시민 단체들에 인기 있던, 그리고 인기 있는 경제 위기-재벌 책임론. (독점자본 효율화가 그 주장의 본질인 전형적인 포퓰리즘!)

6) 그리고, 1997년 10월 이후 경제 위기가 폭발하자, 그것을 1996년 당시는 경제 위기 국면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로 삼는 대신에, 봐라, 1996년은 경제 위기였지 않은가! 하고 왜장치던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수호자3), 정성진 교수님, 등등등.4)

 

곁가지라면서도 오래전 일을 구태여 꺼내는 이유는, 그때의 그 광대극이 그저 웃어넘겨도 좋은 그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히 진보를, 혹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임을 자처하는 저들조차, 주관적 의도야 무엇이었든, 그 광대극을 통해서 결국 모두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등의 노동 관련 법률의 개악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류의 진보적 언론과 마르크스주의적 학자ㆍ교수님들은 오늘날에도 이런저런 일에서, 역시 그들의 주관적 의도와 상관없이, 자본의 어릿광대 역할을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그러한 어릿광대짓은, 그들이 진보적이라거나 마르크스주의적이라는 성가(聲價)가 높으면 높을수록, 노동자ㆍ인민의 진전에는, 그 어떤 극우 언론, 극우 논객에 못지않은, 아니 더욱 심한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의 주제로 돌아오면, 아무튼 비정규직의 확대와 그에 따른 차별의 심화는 이렇게 갈수록 더욱 격렬해져 가는, 세계적 규모에서의 자본의 생사를 건 경쟁의 반영이고, 또 그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 따라서, 예컨대, 촛불 정부의 배신이라는 따위의, 인기 있는 사고(思考)ㆍ주장은 사실은 부질없을 뿐 아니라, 역사와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뒤돌아보자. 각종 형태의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등의 법률들을 정비한 것은 김영삼 정부였지만, 뒤늦게 사태의 실상을 깨달은 노동자들의 1996년 말-97년 초의 대투쟁에 막혀 시행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그것들을 실제로 시행한 것은 민주적인 김대중 정부였으며, 그것을 더욱 심화ㆍ확대시킨 것도 노무현 정부였다.

방금 앞에서, 진보적 혹은 마르크스주의적 지식인들과 시민 사회단체들, 언론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진보적이라거나 마르크스주의적이라는 성가(聲價)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의 헛발질은 노동자ㆍ인민의 진전에 더욱 심한 해악을 끼친다고 말했다. 소위 민주적이라는 성가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가 신노사관계 구상 어쩌구 하면서 민주노총까지를 이른바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끌어들여 노동 관련 법률들을 개악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김영삼이라는 인물에 후광처럼 어른거렸던 민주 투사라는 이미지 덕분이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가로막혀 시행을 보류했던 그들 법률을, 김대중 정부가, 취임도 하기 전부터 소위 노사정위원회를 구성, 시행할 수 있었던 것도, 물론 충격적인 경제 위기ㆍ외환 위기라는 상황도 작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진보적ㆍ비타협적 민주 투사라는 그의 성가 덕분이었고, 노무현 정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요구하는 자본의 이익을 옹호하고 관철시키는 데에는 정권의 진보ㆍ보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아니, 노동자계급을 어르며 뺨을 치는 것은, 다름 아닌, 이른바 진보적 정권들이다. 그 때문에 그들에 대한 경계와 투쟁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더욱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과 제2차 대전을 거치면서 혁명 지향적으로 된 노동자계급을 회유,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해서 확립되었던 서유럽의 이른바 복지 국가 체제들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파괴되어 왔는지를 보면, 명확하다. 영국의 대처 정권 같은 보수ㆍ극우적 정권에 의해서도 파괴되었지만, 이 경우에는 국가와 자본은 노동자계급을 노골적인 폭력으로 굴복시킴으로써였다. 그런데 사실은 그 복지 제도는 영국의 경우 노동당(특히 토니 블레어) 정부나, 독일의 경우 사민당(특히 쉬뢰더) 정부 같은 소위 진보적인 정권들에 의해서 더욱 대량으로, 더욱 심하게 파괴되었다. 그것도 노동자계급의 저항다운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방심한 나머지, 시쳇말로, 네다바이를 당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모름지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문제, 그 차별의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현 단계의 필연적 요구이고, 갈수록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는 요구라는 것, 그리하여 어떤 자본가 국가, 어떤 자본가 정권이든 그것을 폐지할 수 없고, 폐지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혹은 민주적이라는 정권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른바 기본소득론 같은, 부르주아 국가에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의탁하자는 헛소리에 행여나 귀를 기울여서는 절대 안 된다. 오로지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그리고 과학에 기반한 투쟁만이 착취와 억압이 없는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제2차 대전 후 서유럽에서는 어쨌든 조금은 살 만한 복지 국가 체제도 확립되지 않았느냐고?

여기는 이 문제를 상세히 논할 장(場)이 아니기 때문에, 한두 마디로만 끝내자면, 거기에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몇 가지 배경과 조건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승승장구하던 쏘련에 고무받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인류사 최대의 비극, 즉 엄청난 파괴와 수천만 인민의 도살! 그리고 그에 힘입은 전후의 호황!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만들어 나아가야 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 이외의 다른 조건ㆍ배경들은 존재할 수도 없고, 결단코 그 존재를 허용해서도 안 되는 것 아닌가?!

 

 

III

 

앞에서,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철폐 투쟁, 차별 철폐 투쟁은 과연 차별을, 나아가서 비정규직 자체를 철폐하게 될까 하고 문제를 제기한 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모든 지지와 연대를 아끼지 않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체제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그것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비정규직과 그에 대한 차별은, 그 차별이 약간 완화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철폐되지 않는다는, 모순된 답변을 내놓았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답변으로도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비정규직의 문제는 산업예비군의 문제, 즉 불완전 취업의 문제이고, 사실상의 실업의 문제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체제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그것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비정규직과 그에 대한 차별은 결코 철폐되지 않는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그것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악화되는 실업의 문제, 산업예비군의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내부에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뜻이다.

믿기지 않거든, 오늘날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본과 그 나팔수들인 언론이 볏을 꼿꼿이 세우고 꼬리를 흔들며 자랑하는, 이른바 4차 산업 혁명, 이른바 AI(인공지능) 혁명의 성과들을 보라. 가장 비근하게는, 예컨대, 무인시대 ― 무인주문, 무인카페…일상 속으로 / 사람의 노동은 어떻게 변화할까로 시작하여, 동네 식당, 편의점, 카페까지…사람 대신 기계가 일한다, 서비스업도 자동화…일자리ㆍ임금 모두 감소할 수 있다’”, 로봇이 집 앞까지 배달, 편의점 결제는 자동으로로 이어지는, 지난 6월 29일자 ≪한겨레≫의 커버스토리5) 기사들 중에서, 심심풀이 땅콩 삼아, 쬐~끔만 인용해 보면,

 

국내 무인편의점에도 무인계산대가 있지만, 미국과 중국 등의 무인편의점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별도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 2016년 12월 문을 연 미국의 무인편의점 아마존 고는 지하철 타듯 스마트폰을 찍고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골라 담은 뒤 그냥 나오면 된다. 스마트폰 앱에 등록된 신용카드로 물건값이 자동 결제되기 때문이다. 이런 매장은 현재 시애틀(4곳)과 시카고(4곳), 샌프란시스코(2곳) 등에 있다. 중국 무인매장 스타트업인 빙고박스의 출입 방법도 아마존 고와 비슷하다. 다만 계산대가 놓여 있다. 고객이 살 물품을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그 물품에 붙어 있는 태그를 자동 인식해 값을 청구한다. 중국 온라인 쇼핑 기업 쑤닝의 무인매장 비아이유(BIU)는 안면인식을 활용한다. 출입ㆍ퇴장을 할 때 고객의 얼굴을 인식해 따로 계산하지 않고 나가도 몇 초 안에 결제를 청구한다.6)

 

물론 현재 그러한 매장이 어디에 몇 곳이 있는가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경쟁이 극한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조건하에서 그것이 전면적이라고 할 만큼 대량으로 보급되는 것은 단지, 다시 말하지만,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추세 속에서 산업예비군의 한 형태, 사실상 실업의 한 형태인 비정규직과 그에 따른 차별이 어떻게 철폐되고 사라지겠는가? 그저 필요하면 쓰고, 쓰고 나면 버리는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그것도 급격히!

그래서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결코 철폐되지 않을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도대체 왜 벌여야 하며, 도대체 왜 지지ㆍ지원해야 한단 말인가?

다름 아니라, 고용 없는 세상으로 가는 필연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은 투쟁을 통해서, 조직적으로도, 정치적ㆍ사상의식적으로도, 발전하고, 투쟁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량산하고 있는 자본의 경쟁, 그 때문에 갈수록 가속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과학 기술 혁명, 재생산과정 일반의 무인화는 사실은, 비정규직뿐 아니라, 동시에 자본주의를 넘어 보다 더 고도의 사회, 고용 없는 세상을 위한 물질적 조건을 창출하고 있다. 아니, 그러한 사회를 위한 물질적, 즉 생산력상의 조건은 어쩌면 이미 충족되고도 남음이 있다. 비정규직과 그에 따른 차별과 빈곤의 량산 자체가 그 증거일 뿐 아니라, 이제는 부르주아들조차 어쩔 수 없이 맑스를 떠올리곤 하는 심각한 공황과 그에 따른 장기적 불황들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오늘날 유럽 각국이나 미국에서 이민자 문제를 둘러싸고 득세하고 있는 우익ㆍ극우 포퓰리즘의 밑바탕에도, 한-일 경제 전쟁을 도발ㆍ격화시키고 있는 일제 아베 정권의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태의 밑바탕에도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양립할 수 없는 바로 이 고도의 생산력, 재생산과정 일반의 무인화, 그에 따른 실업과 비정규직의 량산이라는 문제가 있다.

자본은 보다 고도의 사회를 위한 물질적 조건을 창출하지만,7) 그러한 고도의 사회를 열어젖히는 것은 오직 노동자들의 투쟁뿐이다. 시대에 부응하여 노동자들이 혁명적으로 투쟁하지 못할 때, 거기에 똬리를 트는 것은, 이미 1920-30년대를 통해서 경험했던 파씨즘이요, 결국엔 전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익ㆍ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는 작금의 세계정세는 매우 불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물론 의식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겠지만, 바로 그러한 정세 속에서 우리의 비정규직 투쟁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이 투쟁은 더욱 소중하고 의의가 있다.

당장엔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 철폐라는, 말하자면, 경제주의적 요구에 머물러 있지만, 투쟁은 발전하면 할수록 보다 높은 차원의 투쟁으로 발전할 것이며, 또한 가능한 한 조속히, 그리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그렇게 발전하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이 혁명성을 잃고 퇴행일로에 있던 1980년대 후반에 문자 그대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던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경외의 대상이었다. 당시의 투쟁이 국제 노동 운동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남겼다면, 이제 터져 나오기 시작한 비정규직 투쟁은, 비정규직 문제의 배경ㆍ본질을 까발리면서, 그것이 고용 없는 세상을 향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발전해야 한다는 모범을 보여 주자.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고용 없는 세상?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용이란, 물론 사회적 노동생산력의 일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에 의해 규정된 그것이지만, 아무튼, 생산수단이 소수에 의해서 사적으로, 즉 독점적ㆍ배타적으로 소유되어 있고, 다수의 인민은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무산자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에만 존재하는 강제 노동이다. 따라서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폐지되면 고용도 없다. 재생산과정 일반의 무인화가 운위되는 현재의 고도의 생산력은 바로 그런 사회, 즉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그리하여 고용도, 어떤 형태의 강제 노동도 없는 사회를 가능하게 하고 있고, 또한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도의 생산력은 비정규직을 포함한 광범한 실업과 빈곤을 통해서 노동자계급을 몰아가고 있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에 기초한 사회의 건설이라는 이 시대의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라고!

사실 현재의 생산력은 엄중히 묻고 있다! ― 자유의 왕국이냐? 인류 절멸의 대재앙이냐?  노사과연

 

 


 

1)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168.; 채만수 역, 제1-2분책, p. 255.

 

2) “전체적으로 보면, 이것은 또한 개별 자본가의 선의나 악의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자유 경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을 개별 자본가에게 외적 강제 법칙으로서 관철시킨다.”(같은 책, S. 286.; p. 449.); “경쟁은 각 개별 자본가 누구에게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내재하는 법칙을 외적인 강제 법칙으로서 강제한다.”(같은 책, S. 618.; 채만수 역, 제1-4분책(근간), p. 977.);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것은 산업 혁명 후 영국에서 국가가 노동일을 강제적으로 제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배경과 경위를 설명하는 한 대목이다. 당시는 세계 시장을 영국의 자본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시대였고, 따라서 경쟁 역시 영국의 자본가 대 영국의 자본가의 문제였다. 이 인용문에서 맑스가, “… 개별 자본가 …”라고 하고 있는 것도 물론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사활을 건 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자본가 대 자본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도 되었다.

 

3) 정성진, ≪마르크스와 한국 경제≫, 책갈피, 2005, pp. 11, 176.

 

4) 보다 상세한 논의와 비판은,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제6판), 노사과연, 2013, pp. 400 이하 참조.

 

5) 흰소리 한마디: 한자(漢字)를 한 자라도 쓰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한사코 쓰지 않는 ‘한겨레’가 “표지 이야기”라는 언문 대신에 “커버스토리”라고 쓰고, “BIU”라고 쓰고 있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역시 예전에는 한자가, 일제 치하에서는 일본어가, 그리고 미제 치하인 지금은 영어가 진서(眞書)임을 실감케 해 주니까!

 

6) 신지민 기자, “로봇이 집 앞까지 배달, 편의점 결제는 자동으로”, ≪한겨레≫, 2019. 6. 29.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9816.html>; 이들 기사들은 물론, “저숙련 중심 일자리 소멸 우려”되지만, “‘전체 일자리는 늘 것’ 분석도” 따위의 헛소리일랑은 귓등으로 들어 넘겨 버리면서 읽어야 할 터이지만!

 

7) “자본가는 오직 인격화된 자본인 한에서만, 역사적인 가치와, … 역사적 존재 권리를 가지고 있다. 오직 그러한 한에서만 그 자신의 과도기적 필연성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과도기적 필연성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 가치 증식의 광신자로서 그는 가차 없이 인류로 하여금 생산을 위한 생산을 하도록, 따라서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키도록 강제하며, 각 개인 모두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이 그 기본 원칙인 보다 고도의 사회 형태의 유일한 현실적 기초가 될 수 있는 물질적 생산 조건들을 창조하도록 강제한다.”(≪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618.; 채만수 역, 제1-4분책(근간), p. 976.); “사회적 노동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의 역사적 임무이자 존재 이유(Berechtigung)이다. 실로 그에 의해서 자본은 보다 고도의 생산 형태의 물질적 조건들을 무의식중에 창출한다.”(≪자본론≫ 제3권, MEW, Bd. 25, S. 269.)

채만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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