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노동자와 통계

공유하기

김태균 | 연구위원

 

 

 

1. 서론

 

애초 이 글의 주제는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이었다. 지난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권이 집권 2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 2019년 5월을 계기로, 필자는 노동자의 삶과 관련된 각종 통계 데이터를 통해 문재인 정권의 2년을 평가해 보고자 했다. 그러나 원고를 준비하면서 통계를 통해 문재인 정권을 평가하겠다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원고의 방향을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

필자는 애초의 주제인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을 준비하면서 한 달여 가까이 노동자의 삶과 직ㆍ간접적으로 관계된 정부의 각종 통계 데이터를 취합했다. 예를 들면, 한국은행, OECD, 통계청, 고용노동부, 한국교육개발원, 문화체육관광부,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등 노동자의 생활에 직ㆍ간접적으로 관계가 될 만한 통계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을 만한 곳을 뒤졌다.

그 결과 필자는, 지난 2년간의 경상수지 비율, 시간당 노동생산성, 성별 및 연령별 고용률, 노동소득 분배율, 노동조합 조직률,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산재 사망률, 가구소득, 국민총소득, 소비자물가 상승률, 인구 성장률, 가사 노동시간, 고등교육 이수율, 공교육비 비율, 학생 1인당 사교육비, 교원 1인당 학생 수, 여가 시간, 건강보험 보장률,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율, 주택 수, 주택 임대료 비율,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제정 또는 개정된 각종 법률과 특히 고용노동부 관련 지난 2년간 통과된 각종 법률 등에 관련한 데이터를 취합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이 기본적인 정부 통계 데이터를 취합한 이후, 필자는 곧바로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의 집필을 시작했다. 대략 9개 분야―①경제 성장 관련 데이터, ②고용과 노동 관련 데이터, ③소득과 소비 관련 데이터, ④인구 성장 관련 데이터, ⑤가족 관련 데이터, ⑥교육 관련 데이터, ⑦문화와 여가 관련 데이터, ⑧사회 통합 관련 데이터, ⑨주거와 교통 관련 데이터―로 목차를 구성하였고, 각 분야에서 노동자의 삶과 직ㆍ간접적으로 관련된 데이터를 문재인 정권 집권 시기인 2017년 5월부터 2019년 5월까지 비교 분석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집권 2년을 평가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취합한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필자가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체감 데이터와 정부 조직들에서 작성한 데이터 간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데이터, 산업재해와 관련된 데이터를 살펴보자.

아시다시피 비정규직 문제는, 지난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근로자 파견자를 확대하면서 시작된, 한국 노동의 최대 현안 문제이다. 그리고 산업재해 문제 또한 한국 노동의 고질적 문제로, 특히 지난 2018년 故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사건으로 더욱더 뜨거운 사회적 관심사의 된 문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통계청이 정기적으로 작성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10년 전인 2009년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34.8%라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10년이 흐른 2018년에도 여전히 비정규직 비율은 33%라고 발표하고 있다([표1] 참조).

 

[표1]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1)

(단위: %)

 

한 집 걸러 한 명 이상씩 늘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두 눈 시퍼렇게 존재하고 있는데, 10년 전보다 오히려 1.8%가 줄었다는 정부 통계청의 비정규직 통계를 보고, 도대체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을 쓸 자신이 없어진 것이었다.1)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비단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통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난 2018년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했던 故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으로 외주화와 함께 산업재해 문제가 전 사회적으로 떠들썩했었다.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는 산업재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산업재해 관련 통계는 더더욱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예를 들어,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분석≫을 보면(아래 [표2] 참조), 2006년은 전년 대비 재해 증감률이 0.0%인데 이후 매년 전년 대비 재해 증감이 (-)로, 즉 재해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통계 데이터를 제출하고 있다. 또한 전체 재해율을 보더라도 전체 노동인구 중 0.5%대 정도라고 이야기하면서 한국 노동시장의 산업재해율이 매우 낮고, 그것도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고 통계를 제출하고 있다.

 

[표2] 산업재해 현황2)

(단위: %)

 

도대체 말도 안 되는 통계 데이터가 아닌가? 故 김용균 노동자를 차치하더라도 지금도 현장에서는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손과 발을 그리고 하나뿐인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인 데도 말이다.

2년 전인 2017년 5월 2일자 YTN 방송3)에서는 한국 사회의 산업재해가 OECD 가입 국가 중 1위라는 방송을 하면서,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살인적 산업재해에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노동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 바가 있다. 이처럼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나 산업재해 문제가, 정부의 통계와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비정규직 비율 및 산업재해 현황과 관련한 정부 통계만이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정부의 모든 통계 자료는 우리 노동자들의 삶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필자는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작성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도대체 새빨간 거짓말 같은 정부의 통계 자료를 노동자들이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나 자본에서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을 비롯해서 각종 산별과 연맹 그리고 노동 관련한 연구소에서도, 매년 숫자화되는 통계 데이터를 활용해서 정세 분석이나 매 시기마다의 연구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 꼼꼼히 다 보기도 어려울 정도의 자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 모든 자료들을 보면, 발행 주체가 설사 노동 쪽 단체들이라 하더라도 활용하는 통계 데이터는 통계청이나 고용노동부 등 정부와 정부 유관 기관의 통계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새빨간 거짓말(=정부나 정부 유관 기관의 통계 데이터)을 활용해서 제출되고 있는 노동 쪽 자료들이 설사 노동 쪽 자료라 할지라도 과연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필자는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에 대한 집필을 포기하고, 노동자가 어떻게 통계 데이터를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기본적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고민이 애초의 주제이기도 했던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이라는 글이 늦어지게 된 이유였다. 아니 늦어짐을 넘어 아예 새롭게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이라는 제목을 노동자와 통계로 바꾸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글 노동자와 통계는 정부가 주도하고 정부가 제공하는 노동자의 삶에 직ㆍ간접적으로 관계되는 통계 데이터에 대해 노동자가 어떠한 원칙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지금 현재 우리에게 제공되고 있는 정부의 통계 데이터에 계급성이 존재함을 이야기할 것이다.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계의 계급성에 대한 폭로와 함께 노동자계급이 통계를 바라보는 원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적으로 2장에서 통계에 대한 개념을 규정할 것이고, 통계에 대한 개념 규정과 더불어 통계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규명해 보겠다. 그리고 3장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통계에 대한 계급성을 폭로하겠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객관이라는 미명하에 자본주의 지배계급에게 복무하는 통계의 계급성을 폭로하겠다. 그리고 4장에서는 통계에 대해 노동자계급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2. 통계란 무엇인가?

 

통계는 사회 현상의 양을 반영하는 숫자이며, 특히 사회 집단의 상황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김동욱, 2015). 즉, “‘통계는 자연 현상이나 추상적인 수치의 집단 또는 사회의 집단적 제 현상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통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말로 흔히 다음과 같은 말이 널리 쓰인다: 거짓말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이것은 마크 트웨인이라는 미국의 소설가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수상을 지냈던 디즈레일리의 통계는 우리들이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못할 정도로 가장 자연스럽게 우리를 속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는 말을 가지고 와서, 작가적 상상력과 어휘력을 발휘하여 만들어 낸 통계와 관련한 유명한 경구이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경구가 통계의 대표적 경구로 표현되는 이유는 바로, 통계가 진실처럼 인간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즉, 인간에게 숫자로 표현되는 사회적 제 현상은 대단히 과학적인 양 다가온다.

숫자와 관련해서 필자가 오래전 겪었던 일화를 이야기해 보겠다.

1989년 서울대에서 개최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노동악법 철폐와 전노협 건설을 위한 전국 노동자대회에 참여했을 때에 일이다. 한 해 전 연세대에서 개최된 합법성을 쟁취했던 88년 전국 노동자대회 때와는 달리, 89년 전국 노동자대회는 노태우 정권의 폭력과의 전쟁 선포 이후 노동 운동에 대한 강도 높은 탄압 정국에서 개최되었다. 노동 현장마다 노태우 정권의 군홧발과 구사대의 식칼 테러가 노동자의 가슴을 겨누고, 무노동 무임금을 주창하고 노조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는 등 자본과 정권의 폭압적 탄압이 이어졌다. 89년 전국 노동자대회는 바로 이러한 폭압적 탄압 속에서 개최되다 보니, 대회 자체부터 경찰의 원천 봉쇄를 뚫고 대회 장소에 진입하는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동국대에서 개최된 전야제에 참석했던 대오는 이후 서울 외각에 있는 서울대 본 대회에 참석하고자 적게는 3시간에서 많게는 6-7시간을 서울대를 둘러싼 관악산을 밤새워 걸어 서울대 진입 투쟁을 했었다.

나 또한 동국대 전야제 참석 이후 지역의 동지들과 함께 수원으로 다시 내려와 안양까지 가서 안양에서부터 관악산 밤길을 걸어 서울대 진입 투쟁을 전개했었다. 당시 워낙 야밤이고 또한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불을 밝히지 말자는 사수대 동지들의 말을 듣고 어두운 상태에서 밤을 새워 관악산을 넘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빨간 모자를 썼던 사수대 동지들이 띄엄띄엄 산속에서 서울대로 진입하는 동지들에게 산길을 알려 줬는데 이때 얼마나 가면 됩니까?라는 우리의 질문에 사수대 동지들이 저 언덕만 넘으면 됩니다라고 답변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그때 그 답변이 왜 그렇게 듣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 저 언덕만 넘어가면 된다는 답변을 믿고 돌다 돌다 들어갔던 것이 내 기억으로는 최소 2-3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그때 만약 사수대 동지들이 지금까지 온 만큼만 가시면 됩니다라든지 아니면 앞으로 3km만 더 걸어가면 됩니다라든지 등 숫자로 알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숫자에 대한 인간의 신뢰는 이외에도 많은 예가 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노동자의 평균 학습 시간이 한 달에 한두 번이다라는 말보다는 노동자의 평균 학습 시간이 한 달 평균 4시간이다라는 말이 보다 정확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이러한 숫자에 대한 인간의 신뢰를 보여 주는 대표적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회적 제 현상을 수치화하면, 즉 통계화하면 보다 정확한 것인가?

이에 대해 다른 예를 하나 들어 보자.

○○ 회사에서 임금 인상을 위한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단결투쟁 노동조합에서 임금 인상과 관련한 요구안으로 평균 임금이 280만 원밖에 안 되는 워낙 저임금이기에 통상 임금에 60% 인상 요구안을 노동조합 요구안으로 회사 측에 제시했다. 이때 회사 측에서는 무슨 소리냐? 평균 임금이 왜 280만 원밖에 안 되냐? 우리 회사 임직원의 평균 임금은 280만 원이 아니라 485만 원이다라고 주장한다. 노조 측과 회사 측의 평균 임금과 관련한 통계가 다르게 제시되면서 교섭이 일단 결렬되었다.

단결투쟁 노동조합의 교섭 상황은 물론 가상의 상황이다. 그러나 교섭 테이블에서 평균 임금을 둘러싼 논쟁은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가? 280만 원과 485만 원은 일단 액수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둘 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든지 아니면 평균 임금에 대한 계산법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일 것이다. 우선 ○○ 회사의 임금 현황은 다음과 같다고 가정하자.

 

○○ 회사의 임금 현황표

사장 1명 월 급여 5,000만 원

노동자 A그룹 7명 × 400만 원 = 2,800만 원

노동자 B그룹 3명 × 300만 원 = 900만 원

노동자 C그룹 1명 × 250만 원 = 250만 원

노동자 D그룹 11명 × 200만 원 = 2,200만 원

 

그리고 두 번째로 평균 임금에 대해 확인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평균 임금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①산술평균값과 ②중앙값 및 ③최빈값 중에 한 가지를 의미한다. ①산술평균값은 전체 임금을 인원수로 나눈 값이다. 그리고 ②중앙값은 전체 인원 중 가장 중앙에 있는 인원이 받는 값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③최빈값은 가장 많은 인원이 받는 값을 의미한다.

이에 ○○ 회사 사장이 이야기하는 평균 임금 485만 원은 사장까지 포함한 전체 인원 23명이 받는 임금 총액을 23명으로 나눈 산술평균값을 의미한다(아래 [식1] 참조).

 

[식1] 사장이 이야기한 485만 원의 평균 임금

(1명×5,000만 원)+(7명×400만 원)+(3명×300만 원)+(1명×250만 원)+(11명×200만 원)/23명=11,150만 원/23명=484.78만 원

 

그리고 단결투쟁 노동조합에서 이야기한 평균 임금 280만 원은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받는 임금 총액을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으로 나눈 산술평균값을 의미한다(아래 [식2] 참조).

 

[식2] 노동조합에서 이야기한 280만 원의 평균 임금

(7명×400만 원)+(3명×300만 원)+(1명×250만 원)+(11명×200만 원)/22명=6,150만 원/22명=279.5만 원

 

사장을 포함한 산술평균값 485만 원과 사장을 제외하고 노동조합에서 제기한 280만 원이라는 산술평균값은 통계 수치상 둘 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평균 임금이라는 통계에 대한 입장의 문제이다. 만약에 독자들이 단결투쟁 노동조합 교섭위원이라면, 위의 교섭 테이블에서 나타난 평균 임금 관련한 쟁점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제시할 것인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평균에는 단지 ①산술평균값만이 있는 게 아니다. ②중앙값이 존재하고, ③최빈값 또한 존재한다. 위 ○○ 회사의 임금 현황표에 의거하면, ②중앙값은 전체 인원 중 가운데 있는 인원인 노동자 C그룹의 임금 수준인 250만 원이 된다. 그리고 ③최빈값은 노동자 D그룹에 있는 200만 원이 된다. 즉, 사장의 주장대로 평균 임금이 사장 포함 485만 원인 것도 맞고, 단결투쟁 노동조합에서 제기한 사장 제외 산술평균값인 280만 원도 맞다. 그리고 중앙값으로 계산되는 평균 임금은 250만 원이 되고, 최빈값으로 계산되는 평균 임금은 200만 원인 셈이다. 필자 같으면 교섭 테이블에서 평균 임금으로 우리 조합원들이 가장 많이 받는, 즉 최빈값인 200만 원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요구안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다.

 

1) 사장 포함 산술평균값(평균 임금): 485만 원

2) 사장 제외 산술평균값(평균 임금): 280만 원

3) 중앙값(평균 임금): 250만 원

4) 최빈값(평균 임금): 200만 원

 

이렇듯 평균 임금이라는 통계치 또한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진실이면서도 진실이 아닌 통계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분명한 자기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통계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성

 

필자는 통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이, 정부가 매년 매 시기마다 발표하고 있는 고용률과 실업률 관련 통계라고 생각한다. 아래 [표3]은 통계청에서 매년 발표하고 있는 고용률과 실업률 통계이다.

 

[표3] 고용률과 실업률4)

(단위: %)

 

위 정부 통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개념을 먼저 살펴보면, 경제활동 참가율만 15세 이상 인구 중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며, 고용률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그리고 실업률이란 실업자가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2018년 통계청의 고용률과 실업률을 예로 들면, 2018년 고용률은 15세 이상 인구 중 66.6%가 고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2018년 3.8%의 실업률이란 취업자와 실업자를 합한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실업자의 비율이 3.8%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도대체 말인가 된장인가? 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자가 아니면 실업자일 것이고, 반대로 실업자가 아니면 취업자인 것은 상식이 아닌가? 통계상으로 보면, 66.6% 고용률을 제외한 33.4%의 경제활동인구는 취업자가 아닌 실업자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청이 발표하고 있는 3.8%라는 실업률 통계는, 결국 33.4%-3.8%=29.6%의 경제활동인구를 실업률 계산 시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시키는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밖에는 파악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통계 꼼수는, 지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공황에 맞선 부르주아지의 공세, 즉 세계적으로 실업 대란이 몰아닥친 가운데 한국의 실업률과 실업률 상승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를 기록했다5)는 이데올로기 공세의 근거로 사용되는 등, 통계 자체의 왜곡과 함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공세로써 활용되는 좋은 예이다.

통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계급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는, 지난 2009년 나타났던 소위 100만 해고설이다. 100만 해고설은 2009년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던 이영희 장관으로부터 불거졌다.

이것은 당시 비정규직 사용 기간이 2년인 것을 3년이나 4년으로 연장할 것을 주장하면서 나온 통계인데, 일단 100만이라는 수치가 어떻게 나온 것인가를 떠나서, 해고라는 사회적 현상을 통계화하면서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던 한 사례이다. 2007년 비정규직 법이 시행된 이후 2년이 지난 2009년 7월 1일을 전후로 해서 나타난 100만 해고설이라는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는 결국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3년이나 또는 4년으로 연장할 것을 주장했던 당시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근거로써 통계가 사용된 사례이다.

통계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성은 위와 같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객관적 통계를 사용하되 해석에 있어 자본가계급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활용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통계 자체를 왜곡해서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끔 활용하는 경우이다. 위에서 예를 든 실업률과 취업률의 예가 바로 통계를 자본가계급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경우라면, 100만 해고설은 통계 그 자체를 왜곡하고 사회적 이데올로기 힘으로 강제한 경우가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 이외에도 특정한 경우를 활용함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이는 노동자 민중을 현혹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그래프 조작의 경우이다.

노동자의 임금이 2배로 인상되었다고 가정을 하자. 이때 자본가계급은 노동자의 임금이 2배로 인상된 것을 그래프 조작을 통해 과장해서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는 경우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그림1]은 인상 전 임금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2]는 2배 인상된 임금을 형상화한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높이가 2배이기에 2배 인상된 임금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돈 보따리 그림이 입체적 그림이기에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까지 각각 2배로 인상되어, 2×2×2인 8배가 인상된 것처럼 착시 효과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착시 효과는 아래와 같은 그래프에서도 쉽게 볼 수가 있다.

 

[표4]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6)

(단위: %)

 

[표4]는 고용노동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이다. 이를 그래프로 재구성해 보자.

 

[그래프1]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1)

(단위: %)

 

[그래프2]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2)

(단위: %)

 

[그래프1]은 1997년부터 2017년까지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대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래프를 작성한 경우이다. [그래프1]을 보면 조직화율이 완만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에 반해 [그래프2]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조직 현황을 부분적으로 보여 준 그래프이다. [그래프1]보다 [그래프2]가 급격하게 노동조합의 조직화가 진행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이, 같은 통계 데이터라도 그래프 작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성자의 의도대로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결국 사회의 제 현상이 숫자화되는 통계는, ①누가 작성하고 발표하는가? ②어떤 방법으로, 즉 조사 방법은 어떠한가? ③빠진 데이터는 없는가? 또는 특정한 데이터만 활용하고 있는가? ④원인과 결과를 바꿔치기하지는 않았는가? ⑤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⑥통계 결과가 어느 계급에 복무하고 있는가? 등에 따라 그 내용이 얼마든지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4. 통계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

 

3장 말미에 노동자계급이 통계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언급했다.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면, 통계에 대해 노동자계급이 취해야 할 태도는, 아래와 같이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우선 첫 번째, 누가 작성하고 발표한 통계인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통계의 왜곡은 통계 데이터에 대한 고의적 왜곡이나 그래프나 그림 등을 사용한 고의적 과장 그리고 언론 등을 통해 말도 안 되는 데이터를 공론화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에 노동자계급이 통계에 대해 취해야 할 최우선적 태도는, 그 통계를 누가 왜 작성하고 발표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통계는 자본가 국가 권력에 의해 작성되고 발표된다. 결국 노동자계급이 접하는 대부분의 통계는 기본적으로 자본가계급과 그의 국가 권력에 의해 작성되고 발표된다는 점에서 일단 그것을 의심하고 접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통계를 바라보면서 왜 이러한 통계를 발표했을까?, 이 통계가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꼼꼼하게 분석해 보는 것이,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통계를 접하는 가장 기본적 자세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어떤 방법으로 조사했는가?이다.

예를 들어, 전체 노동자 중 50%가 자유한국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가정을 해 보자. 이 통계 자료를 보면 50%가 어디의 50%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단지 그냥 50%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통계 자료는 노동자계급의 반수가 자유한국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인 양 전달이 된다. 그런데 만약 위의 50% 통계가 전체 1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5명이 답한 것을 근거로 이야기했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물론 사기나 거짓말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10명 중 5명은 정확하게 50%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50%의 노동자가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는 통계 발표를 보고, 그 50%가 10명 중 5명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물론 전체 노동자(모집단)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의 설득력을 가지려면, 설문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수(표본 집단)가 일정한 수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계, 특히 %로 표현되는 숫자에 대해서는 전체의 수(모집단)와 대상의 수(표본 집단)가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빠진 데이터가 없는지 또는 특정한 데이터만을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앞서 [그래프1]과 [그래프2]를 통해서도 확인이 되었지만,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이 [그래프1]에 의하면 완만하게 발전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래프2]에서는 급속하게 성장한 것으로 보이는 착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일부 특정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과장되게 하는 경우나 또는 착시 효과를 나타내는 방식의 그림이나 그래프의 사용 여부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통계는 자본주의라는 사회를 유지ㆍ확대ㆍ강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계급 사회와 무관한 순수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1]과 [그림2]처럼 노동자의 임금이 2배 인상된 것을 부풀리기 위해 높이도 2배, 넓이도 2배, 깊이도 2배인 돈 보따리와 비교해서, 2배가 아닌 8배 이상 임금이 인상된 것인 양 고도의 착시 효과를 내는 방식은, 단순히 입체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과도한(?) 임금 인상분을 공격하기 위한 부르주아 계급의 공격 수단인 것이다.

 

네 번째는 원인과 결과를 왜곡하는 통계 방법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바꿔치기하는 통계가 물가 지수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5천 원 하던 소주 한 병이 올해에는 2천5백 원으로 내렸고, 4천 원 하던 담배 한 갑이 8천 원으로 인상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근거로 노동자의 생활비가 올랐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내렸다고 할 수 있을까? 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작년을 기준으로 소주와 담뱃값을 100이라고 하자. 그러면 올해에는 소줏값은 절반(50%), 담뱃값은 2배(200%)가 되었으니, 50%와 200%의 평균인 125%의 가격이 변화된 것이다. 결국 물가는 25% 인상된 셈이다.

이번에는 거꾸로 올해를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 보자. 올해를 기준으로 작년 소줏값은 100% 높은 200%에 판매되었고, 담배는 50% 가격에 판매되었다. 따라서 125%가 평균이 되고 결과적으로 작년은 올해보다 물가가 25% 높았던 것이 된다. 작년을 기준으로 올해는 물가가 25% 인상되었고,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작년의 물가가 25% 더 높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산상으로 가능한 착시 효과를 나타낸다.

즉,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원인과 결과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부르주아 통계로부터 과학성을 찾는 길이 될 것이다.

 

다섯 번째는 발표된 통계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것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통계란 숫자화할 수 없는 사회적 제 현상을 억지로 숫자화해서 사람들의 상식을 마비시키는 마술적 힘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평균 수명이 63세라는 통계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63세라는 통계가 있는데, 정부가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내용으로 사회보장법을 개정하려 한다면, 무언가 상식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65세 정년이 되기도 전에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망해 버린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정년을 연장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통계 사기를 쉽게 볼 수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통계어느 계급의 이해에 복무하고 있는가?이다.

통계는 경찰, 군대 등과 같은 국가 폭력 기구나 교육, 법, 관습 등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상부구조이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그 해당 사회의 상부구조는 그 해당 사회를 유지ㆍ강화ㆍ확대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통계는 당연하게도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ㆍ확대ㆍ강화하기 위한 기능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모든 것을 단순화하기 때문에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다시금 확인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계에 대해 노동자계급이 가져야 할 기본 원칙을 항상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냥 좋다, 나쁘다, 대부분이 이렇게 이야기했다라는 말보다는, 60%가 좋아하고 있다, 80%가 지지한다 등 구체적인 숫자로 통계화하게 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신뢰하는 통계의 마법이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숫자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50%가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는 통계가, 노동자 10명 중 5명이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는 것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50%라는 통계를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이러한 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5. 결론

 

지금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계가 어떻게 사람들(노동자들)을 속이고 있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계를 바라보는 노동자계급의 원칙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아래 [표5]는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를 근거로 한 통계이다. [표5]만 보면 2017년 가구소득은 462만 원이나 된다. 그것도 작년에 비해 2.2%가 증가한 실질소득 기준으로 말이다.

 

[표5] 가구소득7)

 

그런데 필자는 이 글을 작성하면서 내 소득이 이렇게나 증가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가구소득이 2017년 기준으로 462만 원이나 되었었나? 하는 생각 말이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통계라는 생각뿐이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와우, 우리나라 가구소득(애고, 우리 집 소득은 제외하고)이 2017년도 기준으로 462만 원이나 되는 부자구나라는 착각과 환각에 빠지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통계청의 가구소득 통계가 노리는 것이, 가구소득이 462만 원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위해 파업을 하다니 말도 안 되네 하는 파업 파괴 논리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 어쨌든 원고가 늦어진 것에 대해, 많은 분들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이라는 주제 자체가 결국 새빨간 거짓말을 전제로 해서 문재인 정권 2년을 평가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사회적 제 현상을 숫자화하는 통계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통계를 어떠한 원칙과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것은, 바로 노동해방 세상이라 불리는 노동자 국가에서의 통계 문제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ㆍ확대ㆍ강화하기 위한 통계가 아닌, 인류가 발전시켜 온 생산력의 성과를 노동자 민중의 삶을 풍족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생산을 계획하고 생산물을 계획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통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점은 여전히 21세기를 살아가는 노동자계급 앞에 놓여 있는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 노동자와 통계라는 글을 작성하면서 많은 자료를 취합해 보았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통계가 바로 20세기 쏘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국가 수준에서 작성했던 통계였다. 이는 쏘련을 중심으로 한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이 지구 상의 50%에 가까운 인민들의 삶을 위해, 생산을 어떻게 계획할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분배를 통해 인민의 삶을 향상시킬 것인가? 하는 점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쏘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의 통계에 관련된 자료를 취합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아니 전혀 접할 수가 없었다. 이는 필자의 자료 취합의 불성실성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구조적으로 국가보안법이 현존하는 조건에서의 물리적 제약도 작용했을 것이다.

 

*** 이번 노동자와 통계는 우연찮게 통계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권 2년이라는 글을 준비하다가 쓰게 된 글이다. 이 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통계에 대한 필자의 문제의식이 담긴 글이다. 본고를 통해, 독자들께서도 동일한 긴장도로 통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고를 작성하면서 부족하다는 느낌을 계속 가지게 되었다. 추후 문제의식 수준을 넘어 부르주아 계급의 통계에 대한 대응 원칙과 노동자계급이 해방된 세상에서의 통계를 꿈꾸는, 보다 준비되고 완성된 노동자와 통계로 다시금 여러분들과 만날 것을 약속드린다.  노사과연

 

 

[참고 자료]

게르트 기거렌처ㆍ발터 크래머ㆍ토마스 바우어, ≪통계의 함정≫, 박병화 역, 율리시스, 2017.

게르트 보스바흐ㆍ엔스 위르겐코르프, ≪통계의 거짓말≫, 강희진 역, 작은책방, 2016.

김동욱, ≪통계학원론≫, 박영사, 2015.

대럴 허프, ≪새빨간 거짓말, 통계≫, 박영훈 역, 더불어책, 2004.

 

 


1)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비정규직 근로자 수/전체 임금 근로자 수)×100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분석≫.

 

3) https://www.ytn.co.kr/_ln/0102_201705022331587760

 

4)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5) ≪연합뉴스≫, 2009년 12월 보도.

 

6) 노동조합 조직률=(조합원 수/임금 근로자 수(조직대상 근로자 수))×100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

 

7)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가계금융복지조사≫, ≪소비자물가조사≫.

실질 가구소득은 연평균 물가지수(2015년=100)를 이용하여 산출하였음. ≪가계금융복지조사≫는 표본 개편으로 인하여 2011년부터 조사되었음. ≪가계금융복지조사≫는 2017년부터 소득 및 비소비지출 관련 통계를 행정 자료로 보완한 결과로, 2016년 이전 조사 자료와 직접 비교가 곤란하므로 이용 시 유의할 필요가 있음.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6월 8th, 2019 | By | Category: 제152호(2019년 6월), 현장 | 조회수: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