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 임의로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제목 * 옵션 비밀글 작성자 * 비밀번호 * 내용 비주얼 텍스트 오늘 소개도서는 은격사/엥겔스의 ‘독일 이념/이데올로기’의 원어 완역본의 저자인 이 병창 전 동아대 교수의 ‘현대 철학 아는 척 하기’이고 폭로서한문은 이 도서의 서평 서한문 ‘계몽주의 비판’인데 소위 탈근대주의 철학과 철학자들에 대해서 과학적 시각을 포함한 변혁적 시각을 지니지 않은 문서입니다. 이들은 이미 한 번 이상에서 과학의 시각으로 비판한 바 있고 이의 비판을 도서로 출간한 바 있습니다만 작금의 시기에도 여전하게 이 탈근대주의는 발호 중으로 역시 과학의 부흥을 위해서 꼭 극복해야 할 대상들이 아닐 수 없는데 무엇보다 현 시기의 출판 등의 수단들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국면입니다. 도서는 전항에서 이미 기술한대로 은격사/엥겔스의 저서들 중 그 동안 제 1권만 발행하고 종결했던 도서의 얼마 존재하지 않는 원어 완역판의 번역자의 도서이지만 그간 노사과연에서 폭로한 것과 같은 소시민철학들에 대한 내용과는 다른 점을 지니고 있는데 이 폭로 도서를 발행하기 전에 발간한 도서인 점을 고려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이들 소시민철학들의 실체적 모습들을 파악하는 기초로 볼 수 있습니다. 소시민철학들은 소위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정확히 1950년대 중반 이후의 수정주의의 발호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로 변혁, 혁명에서의 불리한 물질조건의 성립을 바탕으로 탄생, 발호한 철학들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인구의 폭증과 구 식민지 독립 국가들의 현존체제 자본주의로의 편입 등등의 원인들로 인해서 일단의 변혁, 혁명과 현존 상황들의 역전으로 인한 것으로 68혁명은 이를 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가장 문제적인 상황은 바로 선봉, 전위 정당의 수정주의화인 바로 세력화의 상실 현상을 들 수 있는데 과거 세계 제 1차 대전으로 향할 무렵의 유사 현상 이상을 반복한 것으로 20세기 초반의 이 현상이 그나마 노동자 구성 정당들의 국민정당화였다면 이 20세기 중반의 현상은 선봉, 전위의 중심(들)을 상실한 것이었는데 바로 원점이동의 문제로 인해서 기껏 발생한 혁명은 소시민화하고 사조, 조류의 측면에서도 소시민적인 철학의 점거로 표현했습니다. ‘계몽주의 비판’ 제목의 서평 서한문은 근대 세계로 도입한 시점에서의 계몽주의의 신의 존재에 대한 시각에 관해서 기술하면서 시작해 4인의 철학자들에 대해서 기술했고 모두 앙리 백격삼/베르그송(1859. 10. 18 ~ 1941. 1. 4), 마정 해덕격이/마틴 하이데거, 적오다 아다락/테오도르 아도르노(1903. 9. 11 ~ 69. 8. 6; 얼마 안 있으면 사망 만 반세기를 맞이합니다. 동시에 탄생일은 911 이네요!), 길이 덕리특/자크 데리다에 대해서 기술했습니다. 이들이 이미 소시민 철학자들로 문제적인 상황은 과학의 입장에서도 폭로한 바 있습니다만 이 서한문에서는 해설 정도로 이들 철학들을 기술했습니다. 첫 번째 앙리 백격삼/베르그송은 지성의 활동의 순환논증의 오류를 제시한 점을 기술했고 한 가지의 예증을 통한 원리를 설명하면서 지성의 항상 자신의 개념 외부에 부유하는 이단적인 사례를 지니는 점과 이로 인한 무기력에 대해서 기술했는데 이것의 반지성주의적인 맹아도 예측할 수 있음에도 이를 기술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문서는 이를 보조하기 위해 양성애의 사례를 도입했고 실제의 본성을 지성으로 파악하는 것의 불가능성과 이 지성의 발달로 인한 직관 능력의 퇴화를 기술했습니다. 이 점은 ‘지성’과 ‘직관’의 대립적 측면으로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변증법적 사고에서 이탈한 측면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마정 해덕격이/마르틴 하이데거는 근대 자연과학과 계몽주의의 기초인 형이상학 극복의 과제를 제시하면서 근대 형이상학의 기초를 동일성 개념에 존재하는 것으로 본 것을 기술했습니다. 이후 서한문은 도구의 세계의 노정을 기술하면서 종결했는데 문제적인 부분들을 너무나 적게 기술했고 이 해덕격이/하이데거의 부정적인 면모들을 볼 수 없습니다. 비록 형이상학에 대한 극복은 과제이지만 이의 법서사주의/파시즘으로의 몰입은 너무나 큰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서에서 볼 수 없고 해설로만 체류한 사실은 상당한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아다락/아도르노는 법서사주의/파시즘의 등장을 계기로 한 비관주의에 빠진 철학자로 한 편에서 반 법서사주의/파시즘을 주장한 바 있었지만 이미 비관, 패배주의의 내면하에서 동구의 변혁, 혁명에 대해서 전체주의로 파악한 부정적인 철학자인데 서한문에서는 계몽과 계몽주의를 부정적으로 간주한 측면만을 기술했습니다. 현 시기 소위 전체주의 론의 확산의 기여를 확인할 수 있는데 한 시기 지젝조차 반대했던 논의의 확산의 계기를 볼 수 있는 증험으로 볼 수 있지만 서한문에서는 당연히 이러한 기술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서한문에서 가장 자세한 서술을 한 덕리특/데리다로 구조주의에 대해서 기술했습니다. 이미 이 구조주의에 대해서 폭로한 문서들도 다수 발견할 수 있음에도 이를 반영한 증거를 찾을 수 없는데 이 부분에서는 계몽주의를 기만으로 간주하고 해체 작업을 기술하면서 ‘혁명적인 열의’라는 표현으로 ‘혁명’을 기술했습니다. 이 정도면 이 ‘해체주의’를 통해서 조준한 목표를 확실하게 알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 당연하게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인용 부분은 일단 현존체제의 상징의 외피를 통한 은닉을 폭로한 지점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는 비과학적인 문제를 노정했는데 당연하게 과학을 해체의 목표들 중의 하나 이상으로 조준했기 때문입니다. 극복대상들은 너무나도 넘쳐나는 형국인데 이들 중 가장 거대한 문제를 지적하면 바로 극복의 중심을 형성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전파의 문제도 당연한데 이미 지난 20세기 최후 10여 년 전 거대한 후퇴의 도래 이후 더욱 과학을 취급하는 기구들의 탐색의 고난을 경험하고 있고 이것을 물질적으로 반영한 현상의 외화로 전파의 문제를 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도서는 일단 소위 현대철학들을 마극사와 열령/마르크스와 레닌과 대조해 여타의 소시민주의들을 기술한 도서인데 아직 소시민철학들을 전면에 폭로하기 전의 이들의 실체에 대한 윤곽을 확인할 수 있는 도서로 볼 수 있습니다. ‘계몽주의 비판’제목의 서평 서한문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a href="https://blog.aladin.co.kr/713413104/9784522">https://blog.aladin.co.kr/713413104/9784522</a> 사진 KBoard 미디어 추가 썸네일 file11 통합검색 제목과 내용 검색허용 제목만 검색허용 (비밀글) 통합검색 제외 돌아가기 저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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