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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와 청산주의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9-05-14 06:34
조회
12
오늘 폭로도서들은 정동 2제 즉 ‘정동 이론’과 ‘정동 정치’와 ‘감응의 정치학’이고 폭로문서는 로쟈의 이들 도서들을 소개, 비평한 서한문 ‘감응의 정치학과 정동 정치’입니다. ‘감응의 정치학’은 서한문에 제시한대로 부제가 ‘코뮨주의와 혁명’인데 이미 이 진경의 저서로 ‘코뮨주의’도 나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청산주의를 극대화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작금의 청산주의의 규모로 인해서 고무적인 분위기도 그 만큼 효과를 더 반감하는 측면까지 존재하는데 해외의 상황에서는 아직 계급의 과학에까지 미달한 상황이라면 우리들은 청산주의를 아직 탈출하지 못한 상황인데 서한문을 재차 의거하면 법서사주의자/파시스트로도 호명했던 덕리특/들뢰즈를 여전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해외에서 심지어 불식하려하기까지 하는 소위 탈 근대주의의 상황과도 너무나 다르고 여전하게 이를 유통하는 상황은 그 만큼 사상, 주의적 통제, 검열을 재차 확인하는 결과이기까지 한 상황인데 이는 토이기/터키와 같은 상당한 이상으로 나쁜 상황과도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한문에는 ‘혁명에 대한 재사고’를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20세기의 과학 혁명이 아닌 혁명의 청산으로 재사고의 포장 뒤의 언사를 폭로해야 합니다. 이미 자율주의 계통의 선전 면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감응’과 ‘정동’은 일종의 대중들의 반응에 대한 것인데 일종의 반응 추수적인 소위 대중주의(포퓰리즘)의 기제이고 이는 당연하게 척결대상이지만 과학을 위시한 변혁 진영의 성장으로까지는 표현하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물론 변혁 진영 역시도 청산주의는 존재하는 상황이고 청산주의 역시 좌우의 다양한 색체를 지닌 점을 볼 때 더욱 상당한 규모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과학의 부담의 거대한 사실도 노정하고 있습니다. 또 대중의 반응을 자신들의 활동과 존립의 근거로 삼는 점은 그만큼 공허한 상황인 점도 반영한 다고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계급을 상실한 측면에서 더욱 이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쟈의 서한문은 최 진석의 근간 ‘감응의 정치학’의 부제가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코뮨주의와 혁명’인 사실을 기술하면서 시작해 ‘감응’에 대해서 기술했고 이것이 정치와 코뮨주의, 그리고 혁명을 재 사고해보려는 저자의 기획임을 기술했습니다. 바로 청산주의의 커밍아웃과 같은 사실로 20세기 혁명에 대해서 보다 더 확고한 청산의 의지를 발현한 셈입니다. 서한문은 문단을 교체해 소위 ‘근대적 이분법’들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으로서의 ‘감응’을 기술했고 ‘감응’의 프리즘을 통해 근대 이후의 미래를 전망한다고 기술했습니다. 근대 이후의 전망 자체는 중요성을 지니지만 이와 같은 전망 역시도 과학에 기반 해야 하는 것인데 서한문이든 도서이든 당연하게 도서에서 더욱 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서한문은 연속해서 감응의 핵심으로 소위 ‘코뮨’을 지목했고 너무나 당연하게 예측한대로 ‘코뮨주의’라는 생/삶의 제안으로 제기했습니다. 일종의 생활양식으로서의 사조, 조류인 상황인데 전형적인 축적론에 더해서 청산주의를 강조, 피력했습니다. 이는 이 진경의 ‘코뮨주의’와의 확고한 접점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진경의 저서 ‘코뮨주의’가 이론이면 이 도서는 ‘응용’인 점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서한문은 재차 문단을 교체해 역시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법서사주의자/파시스트로 호명받기도 했던 덕리특/들뢰즈의 핵심 개념임을 기술했고 사빈약사/스피노자를 경유해 ‘정동’이라는 번역어를 동시에 사용한다고 기술했는데 마극사/마르크스를 통과한 비 과학을 여지없이 노정한 상황입니다. 문서는 연결해서 상에서 폭로했던 ‘정동’ 2제들을 제시, 비평했고 ‘정동 이론’과 ‘정동 정치’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기술했습니다. 정말 문제적인 공유인데 비과학적인 이론들의 발호를 보고 있는 상황으로 일종의 대중 민주주의에 포획한 상황인 점도 동시에 노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극복하려면 바로 과학을 절실하게 요하는 데 장기간 과학의 파괴의 상황에서 80년대 중, 후반기의 부흥의 움직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고 20세기 중엽 이후의 세계사적인 상황에서 과학에 있어서의 배반 상황은 어디에나 존재했었지만 우리들처럼 최초의 당도 형성하지 못했던 곳에서 더욱 거대했고 현 시기에도 이처럼이나 비 과학의 거대한 발호로도 발현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서한문은 말미에 번역어 ‘감응’과 ‘정동’을 비교해 전자의 친숙성과 이해의 용이성을 기술하면서 전자를 후의 용이성을 불편하게 사고하는 이유로는 후자를 선호할 수 도 있고 일단의 일독을 제안하면서 종결했습니다. 양자의 감성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들 모두 20세기의 혁명 운동사에서 가급적 도피하는 것과 대중의 (즉자적인) 반응을 추수하는 점에서는 동일하고 이런 점에서는 심지어 변혁, 혁명을 주장하는 일부 진영들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세계사적 상황이든 우리들의 초 특수, 극 특수 상황이든 그 동안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만 30년 전 시작했던 거대한 후퇴의 국면을 포함해 후퇴했고 이는 고스란히 아직도 이들의 영향력을 잔존한 현 시기의 상황으로 연결 했습니다. 물론 이 점은 추가로 올해도 아이급과 소단/알제리와 수단에서의 혁명 사건도 발생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이전 2010년대의 제 1 & 2차의 지난 아랍 혁명들도 혁명 정당, 기구와의 연결점을 찾지 못한 상황을 경험했는데 이와 같은 비 과학의 사조, 조류들의 포말로 인해서도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서한문의 대문/댓글에서는 다른 ‘감응’을 취급한 예를 기술했고 이는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에 ‘감응의 정신병’을 포함한 대목으로 기술했는데 제법 많은 부분에서 전파한 소위 탈 근대주의라는 탈 혁명의 문제들을 조우, 목도, 경험하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2010년대를 종결해가는 시점에서 겨우 과학에도 서막을 시작한 상황인데 부흥을 위한 분발을 요하는 시점입니다. 그 동안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이런 도서들을 선전물로 많이 본 바 있었는데 우리들의 대응 선전을 포함한 선전물로 저들을 은폐하는 시점을 도래하도록 해야 합니다.
로쟈의 서한문 ‘감응의 정치학과 정동 정치’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저들의 선전물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aladin.co.kr/mramor/1081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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