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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주의는 모두 실패다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8-09-08 06:58
조회
12

오늘 폭로도서들은 ‘똑똑함의 숭배’, ‘능력주의는 허구다’, 미헬스(동 제목의 한국의 김 성희 저서와 구분을 하기 위해 표기했습니다.)의 ‘정당론’ 도서이고 폭로문서는 전자의 서평문서이기도 한 로쟈의 서한문 ‘능력주의는 왜 실패하는 가’인데 전자와 중자의 도서들은 부제에서 정예(엘리트; 교복 상표 명칭^^)주의의 내재 이상의 실패와 능력주의의 오작동을 주장, 피력했는데 이 점들을 통해서 이들 도서들이 여전하게 진정성이라는 명제를 벗어나지 못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한문에서도 현존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역시나 지면관계를 이유로도 여전하게 하고 있지 않고 이는 신문의 기사문이 아닌 서한 옥(블로그)의 문서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좌, 우파 모두가 능력주의를 환영한 사실은 과거 누군가의 언사에서처럼 일종의 양 진영들의 동거한 광경의 10분지 1 경국 판을 연상해도 무방한데 역시나 지향 상실의 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물론 문서에서도 일반 대중들의 상식에서도 소위 능력주의는 과거 신분제의 굴레에 비해서는 자유로운 것으로 인식하던 적이 있었고 한 시기에는 진보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었던 점도 존재하지만 이미 이 역시도 현존 체제의 발전 등의 다수의 이유들로 인해서 상징에서 제외한 지는 오래입니다. 이는 인본주의, 인도주의(심지어 이의 목적은 과거 로쟈도 폭로한 적이 있을 정도로 반어, 역설의 오류마저 존재합니다.)가 진보가 아닌 상황과 동일한데 이러한 혼란을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적 변혁 사상, 주의의 부흥을 서둘러 실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헬스의 ‘정당론’은 저자의 법서사주의/파시스트 정당의 입당 사실(1923)을 보더라도 반드시 폭로해야 할 도서인데 포이십유기/볼셰비키 정당 역시도 정당의 범주에서는 동일한 동일하게 보고 있습니다. 즉 미헬스에 의거하면 정당인 이상 변혁, 극좌 ~ 극우, 퇴행 정당 등이 모두 동일한 것인데 로쟈의 서한문에서는 인용을 위해 소개했습니다. 서한문(이 문서를 기준으로 폭로합니다. 기사문에서는 도입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은 크리스토퍼 헤이즈의 ‘똑똑함의 숭배’에 대해서 개요를 기술했고 이 도서에서 능력주의의 신화와 실패에 대해서 취급한 점을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이 도서가 포괄적인 점을 언급하면서 동일주제의 도서로 ‘능력주의는 허구다’를 소개, 제시했고 정당정치의 필연적인 정예(엘리트)주의 귀결을 증명하기 위해 로베르트 미헬스의 ‘정당론’을 인용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 정도면 일단 개요에서 좌파적 사상, 주의의 부재를 흘끗 증명한 상황인데 역시나 현 시기의 진공 내지는 가장 이 편으로 유리하게 해석해도 유아기를 겨우 벗어난 사상, 주의들을 대하고 있는 상황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서는 본문(정확히 기사문)으로 도입해 도서 ‘똑똑함의 숭배’의 원제가 ‘정예(엘리트) 계급의 황혼’이고 ‘정예(엘리트)주의가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라는 번역본 부제에 저자의 문제의식을 압축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대조도서인 토마스 프랭크의 ‘(10분지 1 경국; 폭로 자 추가)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이 노동자 계급의 정당(어느 시기?)에서 정예(엘리트) 진보(이 의미는 국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10분지 1경국과 우리의 이의 의미의 차이를 사고해야 합니다.)계급을 위한 정당으로 변신하면서 범한 패착을 지적했다면 헤이즈는 정예(엘리트)의 실패와 그로 인한 대중들의 불신을 관건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비교, 대조했습니다. 일종의 특권적 문제를 제기한 상황인데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정예(엘리트)주의의 정의를 기술했고 이의 의미를 가장 똑똑(영리)한 사람들의 국가, 사회의 지도로 정의했습니다. 문서는 이의 다른 의미로 능력주의를 지칭했고 대중적인 용어로 10분지 1 경국의 몽환(아메리칸 드림)을 노정했습니다. 문서는 연속해서 능력주의의 정의로 실력만 보유한다면 누구든지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는 신념(믿음)의 체계를 지칭한다고 기술했습니다. 이 점까지는 일단이 정의와 소개들로 볼 수 있고 기술한 주의들 역시도 과거 반 인종주의 운동이나 민권운동의 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서는 연결해서 저자가 10분지 1 경국에서 이 능력주의의 변질 과정과 그 원인을 해부한다고 기술했는데 이 점은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인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정예(엘리트)주의든 능력주의든 이들의 현존 체제의 (자유 파적인지는 모릅니다만)파생적 성격과 보존 기여의 성격까지는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반어적인 사안으로 지난 만 10년 전의 오바마의 당선의 예에서 찾았고 이를 능력주의의 눈부신 성과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배반의 상징임을 강조, 기술했는데 이 점에서도 현존 체제의 작동의 도구라는 점 까지도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문서는 연속해서 이의 문제를 폭로했고 인종, 성(적 취향에 따른 부당한 차별; 다만 질의하고 싶은 점은 정당한 차별도 존재하는 가? 입니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취적인 점을 제시했지만 동시에 능력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불평등하다고 인식하는 점에서 비민주적인 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민주주의에 대한 희롱’이라고까지 묘사했는데 이 점은 ‘민주주의’가 여전하게 ‘유산 민주주의’인 점에서 문제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후 지난 오바마 정권 하에서의 불평등의 상승을 폭로했고 능력주의의 애초의 정의를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능력주의가 좌, 우파 모두에서 서로 다른 측면으로 인해 환영받은 사실을 기술했는데 역시나 누군가가 지적한대로 양 진영들이 동거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능력주의 역시도 일종의 상승을 반영한 점의 존재는 당연하게 확인 가능하지만 이의 상승은 여전하게 현존 체제 하에서 체류하는 점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서한문에서도 이 점까지는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문서의 말미로 능력주의의 최 중요요소로서의 교육을 강조, 피력했고 정예(엘리트)가 연대의식을 지니는 대상들이 동료들로 한정하는 점을 폭로했지만 이의 사조, 조류역시도 현존체제를 바탕으로 한 점까지는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노동자 계급이 연대의식의 대상이 아닌 점을 기술했지만 이 점은 다른 사조, 조류들에도 해당해 정예(엘리트)주의나 능력주의만의 특징은 아닌 점입니다.
작금의 자주 경험하는 문제는 바로 노동자의 사상, 주의의 재건, 부흥의 문제인데 이는 상에서 문서가 현존체제에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폭로한 정예(엘리트)주의나 능력주의 역시도 우리들의 사상, 주의의 부활에는 지장을 주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예(엘리트)들이 준 문제는 다수입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문제인 현존 체제의 문제까지는 기술하지 못했는데 이는 바로 능력주의가 보려고 하지 않는 인간의 평등성은 현존 체제를 넘어야만 이의 실현의 실질적 가능성을 두고 있는 점이 존재합니다.
로쟈의 서한문 ‘능력주의는 왜 실패하는 가’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또한 기사의 주소 또한 동일합니다.

로쟈

http://blog.aladin.co.kr/mramor/10310862

경향신문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37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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