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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로부터의 반세기 - 노동자 계급의 결정적 역할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18-06-12 07:10
조회
385

오늘 소개문서는 IDC의 ‘1968년 5월로부터의 반세기 - 노동자 계급의 결정적 역할’이라는 제목의 문서로 영역 등을 고려하여 발표 시기를 늦춘 문서인데 지난 달 5월은 마극사/마르크스 탄생 만 2세기와 68변혁 만 반세기의 기념 월이었고 문서는 ML주의의 입장에서 68변혁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문서입니다. 그 동안 68변혁에 대한 이의 입장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는데 이 68변혁의 성격에서 그리고 시기적 성격에서 패배를 농후하게 반영한 이유였습니다. 무엇보다 68변혁은 호황으로 전환한 현존체제 자본주의의 성격을 노정했고 전후의 호황의 한계 및 이 역시도 쇠퇴기의 성격에 포함하는 구조를 노정했지만 선봉, 전위 및 당연하게 과학 변혁의 사상, 주의의 부재로 인한 자신의 한계도 동시에 노정했습니다. 물론 이에만 종결한 것은 아니고 후대의 역사의 기록으로는 이로부터의 만 1/4세기(25년) 이후 및 올해로부터의 만 1/4세기 전(1993년)까지의 동구권 해체 등을 목도, 경험했는데 무엇보다 1950년대 중반이후의 과학 변혁의 사상, 주의의 소멸 내지는 침체의 문제를 불가항력적으로 경험했습니다. 문서는 격진자/리조스파스티스에 등재한 문서로 우리들에게 알려진 내용 이외에 진정하게 시작한 시점 등의 그 동안 우리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몰랐던 부분들을 폭로, 제시해 봉기의 진정한 시작 등의 정보를 제시했습니다. 이 점은 본격적인 변혁에 앞 선 투쟁의 예행, 예행 적 투쟁을 확인한 이상의 의의를 제시했고 제목에서처럼 노동자 계급의 역할을 강조해 당시의 임무를 확인하는 동시에 오늘 날 새로이 수립해야 하는 지도력에 대해서도 논의, 기술한 문서입니다. 작금의 이의 지도력의 (재)수립의 과제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다수의 국가, 지역들에서 아직 이를 수행할 중심체(어느 국가처럼 정당 자체의 부재의 문제도 있으나 대부분은 정당은 존재하되 이의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세력관계에서 도달을 하지 못한 상황을 의미합니다.)를 지니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는 과학적인 사상, 주의를 재건하면서 수립해야 하는 것이지만 반세기전에는 불란극복/프랑크프루트 학파들이 주도하면서 오도의 방향으로 이탈했습니다. 문서는 1968년 5월의 불란서/프랑스의 사건 이후 반세기를 경과한 현 시점에서 미코스 카치아나코스(1942 ~ 2003)와의 대담을 재 발행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미코스 카치아나코스는 68변혁 당시 변혁운동에 참가한 바 있고 당시는 희랍/그리스의 계치도 백백사보락사/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1919 ~ 99; 하필 내년이 이의 탄생 만 1세기라는!!!)의 독재치하를 막 시작한 무렵이었는데 이의 체제의 최종붕괴인 1974년까지 꽤 오랜 동안을 참가했습니다. 이의 대담은 만 30년 전인 지난 1988년 처음 발표했는데 이 시기가 공교롭게도 변혁의 만 1/5세기(20년)이자 동구권 붕괴 시작을 앞 둔 연도였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1968년 5월의 유명한 학생봉기 이전의 4월 말과 5월 초의 봉기를 언급했고 소방/소르본 외곽의 큰 대학에서 학생과 경찰간을 쫓아간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연속해서 5월 10일까지의 야간 경기를 한 사실을 기술했고 이 시점까지는 아무도 투쟁의 불길이 솟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기술했습니다. 68의 전신의 사건은 이미 만 1년 전 1967년 6월 2일의 서 백림/베를린에서의 사건이 존재했는데 불란서/프랑스에서는 1968년 3월 남태이/낭테르 대학에서 격돌하면서 발화했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5월 10일을 경과하면서 상황을 전환했고 노동조합(노동총동맹 CGT 추정)과 PCF(불란서/프랑스 공산당)이 하이 재고락/샤를 드골(1890 ~ 1970)의 정책에의 저항을 촉구한 상황이었음을 기술했습니다. 이의 전파는 문서를 의거하면 3일 내에 성취했고 5월 13일에 당도해서는 거대한 시위, 봉기를 한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PCF의 지도력의 소재를 기술했는데 이의 소재는 CGT와 몇 몇의 노조인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학생들의 반응을 촉발한 이유 등을 기술했고 카치아나코스가 기술한 내용들을 등재했는데 바로 1968년 5월에 이전에는 부재했던 것들을 완수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연속해서 학생들의 역할과 비중에 대해 기술했고 권력공백마저 존재했던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주제를 교체해 마르쿠제를 위시한 몇 몇의 견해는 잘 알려졌다고 기술했는데 바로 변혁의 주도진영의 소재를 본다면 필연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서는 다시 문단을 교체해 노동계급의 전투 진입에 대해 기술했고 이의 현상을 발현할 시에 현존체제의 동요 현상도 관측 가능하다고 연속 기술했습니다. 문서는 이의 주제의 말미에서는 5월 29일의 상황을 기술하면서 종결했습니다. 문서는 마지막 주제로 이행해 단니이 공 - 본적/다니엘 콘 - 벤디트(1945 ~ ; 이전엔 꽁 - 방디라는 불/프랑스어로 표기한 바 있습니다.)에 대한 내용을 기술했고 이의 사상, 주의적 한계를 기술, 폭로했습니다. 한 시기에 단니이 공 - 본적/다니엘 콘 - 벤디트는 68에서의 그 분으로 평가받은 바 있었지만 과학 사상, 주의의 부재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한 데 문서는 적색 단니이/다니엘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주장, 피력했습니다. 문서는 결론적으로 당대의 격렬했던 현장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노동 계급의 개입의 필요성과 노동자들이 처음 며칠 동안 지니고 있던 주 요구 사항을 기술하면서 종결 했습니다.
문서는 만 30년 전의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절실한 내용을 기술했는데 무엇보다 과학 사상, 주의와 변혁정당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참가의 누락 상황의 귀결을 생생하게 목도한 바 있습니다. 이 시기의 투쟁들은 50년대 중반의 혁로열부/흐루시쵸프의 사건으로 인한 문제와 이전부터 현존체제의 소위 부흥현상에 의거한 과거의 변혁 정당들과 조직 노동기구들의 관료화 문제로 인해 과학 사상, 주의의 부재 및 소멸 하에서 발생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기에도 진정한 변혁을 성립한 국가들도 발생했지만 경향을 전환하는 국면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고 이후 이로부터 만 30여년 후에는 소위 거대한 후퇴의 현실을 목도, 경험했습니다.
IDC의 ‘1968년 5월로부터의 반세기 - 노동자 계급의 결정적 역할’이라는 제목의 문서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http://www.idcommunism.com/2018/05/50-years-since-may-1968-crucial-role-of-the-working-clas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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