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위한 본격적인 절차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농수축산 생산자단체들은 범농어민단체를 구성해 국내 농어업에 닥칠 피해에 공동대응하기로 뜻을 모았다.

정부는 올해 4월 중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발표해 농수축산 생산자단체의 우려와 반발을 사고 있다. CPTPP는 일본과 캐나다,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11개 국가가 2018년 12월 출범시킨 협의체로 회원국 간의 농축산물 개방률이 96.3%에 달해 국내 농수축산업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박흥식, 농민의길), 한국농축산연합회(회장 이은만), 한국수산업경영인연합회(회장 김성호, 한수연), 한국임업인총연합회(회장 최무열) 등 4개 농업·수산업·축산업·임업 단체로 구성된 ‘CPTPP 가입 중단을 위한 농어민 공동행동(가칭)’ 대표자들은 정부의 CPTPP 가입 추진에 제동을 걸기 위해 지난 1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이미 많은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우리 농축수산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정부는 무역 이익공유제 등 온갖 감언이설로 우리를 설득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실체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또다시 CPTPP를 진행하면서 대충 설명하고 넘기려는 꼼수가 시작되고 있다”며 “이번만큼은 분명한 피해 대책과 이전에 지키지 못했던 무역 이익공유제 이행 등을 꼭 지키겠다는 확실한 보장 없이는 결코 어떠한 협상도 없을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농식품부 예산 확대 △품목 축종별 피해 조사 실시 △식량안보 기본법 법제화 △농축수산업 보호 정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어떠한 사태가 발생해도 그 책임은 분명 정부에 있다”고 경고했다.

박흥식 농민의길 상임대표는 “우리 생산자단체가 한목소리로 CPTPP 반대 입장을 천명해 (오늘 오전 10시에 진행될 예정이던) 설명회를 못하게 무산시키고 이 자리에 왔다”며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얼마나 더 많은 농민들이 희생해야 하느냐”고 분개했다. 이어 “기상위기로 세계 식량이 위협받고 있다”며 “정부가 식량 자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국민 먹거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요구받는 이 시점에 또 CPTPP를 통해 농업을 추가 개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어업인을 대표해 발언대에 선 김성호 한수연 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식량 주권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의 지속적인 발생과 인구 소멸 등 어업인들의 생존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특별한 정책이나 대안도 없이 (정부가) CPTPP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어 “정부는 CPTPP에 대한 어떠한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이나 해명도 없이 농업인들을 기만하고 있으며, 요식행위로 지역 순회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대만이 (CPTPP 가입을 위해) 조만간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며 “ 그렇게 되면 향후 일본이 대만의 전례를 들어 우리나라에 이를 선결 조건으로 강하게 요구할 수 있어, 현실화되면 국내산 수산물에도 부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수원은 농업계와 힘을 모아 정부와 정치권을 대상으로 강력한 (CPTPP)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우리 수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대투쟁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나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단체장들은 CPTPP 가입을 막기 위한 공동대응 의지를 다졌다. 이승호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은 “그동안 많은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우리 농축수산업계가 상당한 피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다자 간의 협상을 또 하겠다고 한다”며 “CPTPP가 진행되는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공동대응할 것이다”고 말했다.

반상배 한국인삼협회 회장은 “농업의 포기는 이 나라의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식량 공급을 다른 나라에 의존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며 “미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CPTPP 가입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우리 국민을 위해서 최소한 농업의 자급률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농업을 등한시하는 이 정부가 너무 안타깝다”며 “함께 투쟁해서 CPTPP를 저지하고 막아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박흥식 농민의길 상임대표,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 이승호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 이홍재 대한양계협회장, 조영제 한국국산콩생산자연합회장 등 주요 농수축산 생산자단체장들은 이날 오전 농식품부측 CPTPP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aT센터 4층에 집결, 참석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간담회를 무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