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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칠레의 전투

작성자
보스코프스키
작성일
2020-01-13 06:28
조회
548
오늘 폭로문서는 매일노동뉴스의 지리/칠레의 전투에 관한 문서로 문서는 과거 1970년대 지리/칠레의 상황에 대한 기록영화(다큐멘터리) ‘지리/칠레전투’를 기술하면서 시작해 이 기록영화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과정을 소략하게 기술했고 기록영화의 제작 과정을 기술했습니다. 이 기록영화의 역사적인 배경의 시기는 우리들에 있어서도 유신 직후였던 시기였고 비율빈과 인니서아/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위시한 소위 제 3세계 등지의 일원에서 총체적 퇴행의 시기였습니다. 물론 작금의 시기에도 문제적인 상황인 토이기/터키도 두 번째의 군사 정변을 맞이하던 시기였는데 이들 아세아/아시아 및 아랍 권에서 1971년경에 있었던 상황에서 만 2년 후 지리/칠레에서 발생한 퇴행 사건은 너무나 야만적이었고 문서도 이를 일부 기술했습니다. ‘지리/칠레전투’의 필름의 역사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의 소위 반출 과정도 치열한 작전이었고 고파/쿠바로 이송 후에 편집을 종결하고 강성/알납[내]/칸 영화제에 제출한 과정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록영화의 제작기간은 1975 ~ 8 년간으로 오고사특 피낙체특/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정변 전후의 만 9개월간의 기록인데 백특리서오 고사만/파트리시오 구스만(1941. 8. 11 ~ )과 동료들의 노고들도 기술했습니다. 영화는 문서에서도 기술한대로 3부작으로 기술했고 지리/칠레에서의 영화의 개봉은 피낙체특/피노체트의 재판 이후 성취했습니다. 물론 영화를 무사하게 구출한 과정도 정말 사활을 건 작전이었는데 상영 역시도 당연히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볼 수 있고 올해는 중남미에서도 독재정권을 가장 늦게 종결한 후 만 30주년인 연도이기도 해 더욱 뜻 깊은 영화였는데 문서는 당연히 이 영화와 같은 현 시기의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에서는 일단의 과거 영화의 현실에서의 재현이라고 볼 만큼을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 시기의 투쟁은 바로 그 간의 누적 상황의 폭발에 더해 정권의 현상에서도 피낙체특/피노체트 시절 이후 처음으로 계엄 상황을 본 사실에서 더욱 공포를 감지하고 봉기했는데 문서에서는 여기까지는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문서에서 위내서랍/베네수엘라와 대조한 한 진보언론에 대해서 폭로한 모습은 다소 좋았는데 이의 반대의 대조는 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의 모습을 대조한 문서였는데 바로 그렇게도 좋다던 그 언론에 의거하면 지리/칠레에서의 봉기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물론 봉기라고 해도 당연히 침공의 수단화한 봉기 존재하고 이는 위내서랍/베네수엘라 등지에서 보는 이것들이 이러한데 지리/칠레의 역사에 있어서도 바로 ‘지리/칠레전투’의 배경의 시기에서의 일부의 봉기들이 이러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저러한 침공적인 봉기라고는 해도 해당 사회에서 원인은 존재하게 마련이고 동시에 진보적인 요구(성격이 아닙니다!)를 필요로 하는 것 또한 당연한데 1970년대의 침공적인 봉기의 원인 역시도 너무나 잘 알려진 대로 지리/칠레의 수출품인 구리에 대한 가격하락유도 등으로 인한 것으로 일단의 경제적인 침투, 침공을 선 실행한 사실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문서는 전항에서 기술한대로 기록영화 ‘지리/칠레전투’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기술하면서 시작해 본문으로 도입해 1970년대 이후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을 전개한 사실을 기술했고 유명한 지하철 요금의 인상에 대해서 기술하면서 원인은 이것 때문이 아닌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지닌 점을 폭로했습니다. 문서는 이 부분에서 자세하게 기술했는데 최저임금으로 30.1만 페소(한화 약 46만 5천원), 실제로 노동자들이 40만 페소(한화 약 62만원) 정도 이하의 초 & 극 박봉에 시달리는 현상을 폭로했습니다. 문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미에서 유일하게 OECD를 가입하고 있는 국가인 점도 폭로했고 부유하고 질서 잡힌 나라로 기술한 점을 폭로했는데 이 부분에서 역시 전항에서 폭로했던 문제의 비교를 제시, 폭로했습니다. 너무나 문제적인 시각으로 유산적인 시각과 차이가 없고 아마 제호를 보지 못했다면 유산 언론으로 착각할 뻔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적인 정신들을 목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문서는 문단을 교체해 경제적인 이유로만은 당연히 경제주의인 점을 지적, 강조했고 가디언의 대담에 의거해 만 18세의 학생의 대담을 통해서 현 체제의 종식을 원한 점을 강조, 기술했습니다. 현 시기에는 당연히 피낙체특/피노체트 헌법에 대한 개헌안까지 출원한 상황이고 이는 우리들이 경험했던 수동화의 귀결 가능성도 남겨두고 있습니다. 문서에는 아직 이 부분까지는 발표 시기상 기술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만 1/3세기(33년) 전의 우리들처럼 당의 부재 상황까지는 아니어서 다소 다행인 점도 존재하지만 대신 중도연합과 같은 장애 이상의 역할을 하는 기구들이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문서는 재차 문단을 교체해 봉기가 혁명을 요구하는 상황을 폭로, 기술했고 당대의 대대적 개혁에도 물러서지 않은 모습을 기술했는데 이후 개헌에도 물러서지 않은 모습도 존재하는 형국입니다. 물론 이는 문서에서 기술하지 않은 당의 존재들(PCC(지리/칠레 공산당)와 PC(AP)(공산당)(무산 행동)등)로 인한 것이기도 한데 이미 참세상의 문서를 통해서 이를 확인한 바 있기도 합니다. 문서는 피낙체특/피노체트의 퇴임 이후 만 30년 후에도 사망 후 만 13년 후에도 전혀 전환하지 않은 모습을 폭로했고 총파업을 위시한 상황들을 기술하면서 종결 했습니다.
올해는 황색 동의/노란조끼 혁명도 재차 봉기했고 애급/이집트의 상황도 만 6년간의 압박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봉기했는데 여전히도 이러한 내용을 기술한 언론을 찾기는 너무나 힘든 상황입니다. 일단의 우리들의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의 상황을 반영하는 당을 찾기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인데 과학, 변증법의 부흥을 요하는 상황인 점은 매양 너무나 동일한 이상입니다. 문서는 아직 초기여서 그런지 당의 결합까지는 기술하지 못한 한계도 노정했습니다.
매일노동뉴스의 지리/칠레의 전투에 관한 문서의 주소는 제시 주소와 같습니다. 외의 다른 백과항목과 대조 문서들의 주소 또한 제시 주소 목록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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