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올해는 20세기 쏘련의 현대음악가 쇼스타코비치가 태어난 지 100년 째 되는 해이다. 언론은 모차르트 탄생 250년이라고 떠들썩했지만, 20세기 모차르트라 불리며 등장한 그는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조명했다. 비단 올해가 아니더라도 그에 관한 한국의 자료는 많치 않다. 단적인 예로 올해를 제외하고 클래식 잡지 『객석』이 그를 특집으로 다룬 것은 단 두 차례 밖에 없었고, 그 중 하나는 쇼스타코비치 탄생 90주년 기념 기사이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의 양극단의 평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쏘련 체제에 협력한 ‘어용’예술가, 다른 하나는 야만적 쏘련 체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작곡가라는 것이다. 전자는 사회주의 진영이 존재할 당시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클래식은 물론 쏘련 동유럽의 대중음악조차 듣기 힘든 시절의 주된 관점이었다. 반면에 후자는 미국으로 망명한 쏘련 음악사가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 쇼스타코비치 회고록』(이하 『증언』으로 표기) 출판 이후에 퍼진 것이며 한국에선 1980년 대 초반 소외론자들이, 그리고 쏘련의 패배 이후엔 자율주의자들이 주로 그런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쏘련의 쓰라린 패배 이후 의기양양한 부르주아 비평가들도 종종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소 뜬금없이 쇼스타코비치에 관해 회원마당의 형식으로 올리는 것은 그러한 양 극단의 평가 모두가 사회주의 예술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또한 필자의 졸고 ｢쿠바혁명과 예술운동｣에서 앞으로 해나갈 지속적인 과제로 미뤄둔 즈다노프 비판¹⁾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작곡가가 바로 쇼스타코비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가 음악전공자도 아닐뿐더러 클래식 음악에 대해 지식이 짧은데다가 방대한 작품을 발표한 그의 작품의 일부만을 맛본 정도이다. 또 쇼스타코비치하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흐르는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정도만 떠올리면 그나마 다행인 분위기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주객관적으로 무척이나 무리한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²⁾과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에 대한 초고로서, 노사과연 미학 세미나 팀원으로서 나름대로 학습하고 있는 이의 습작으로서 글을 보면 된다. 한 가지 더 부언하면 지난 여름 연구소 수련회에서 여름에 쿠바 음악을 다루었으니, 겨울엔 러시아를 다루었으면 한다는 한 회원을 요구(?)도 있었다. 너그럽게 읽고 또 조언과 비판을 해준다면 감사하겠다.

예술가와 사회 그리고 혁명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레닌이 탁월하게 서술한 것처럼 반영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면 반영 또한 있을 수 없다. 예술도 사회생활의 반영이며 사회생활은 예술의 원천이다.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이 없었다면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도 없었을 것이며³⁾ 파리 꼬뮌에서의 영웅적 투쟁이 없었다면 ‘인터내셔널가’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류 예술사회학자들 조차 예술작품을 작가 개인의 차원에서 분석하지 않고 예술의 생산․분배(전달)․소비(수용)의 일직선상에 둔다.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도 러시아 혁명과 쏘비에트 사회주의와 불가분의 관련성을 맺고 등장했다. 1905년 혁명이 패배로 끝난 후 이듬 해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는 쌍트 뻬뜨르부르그⁵⁾에서 태어난다. 1905년 혁명은 1957년 교향곡 제11번 《1905》를 발표할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 가족은 끊임없이 1905년 혁명에 대해 토론을 했다. 나는 그 이후에 태어났으나 그 이야기들은 나의 상상력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좀 더 자라서 1905년 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읽게 되었다. 그 사건은 짜르에 대한 민중의 믿음을 뿌리뽑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⁶⁾ 

또 레닌과 러시아 혁명도 그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1960년 10월 잡지 『라디오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57년, 나는 최초의 러시아 혁명에 바치는 교향곡 제11번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때 이미 다음 작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10월 사회주의 혁명에 바치는 교향곡 제12번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교향곡 4악장 중에서 두 개는 이미 완성해놓았다. 2, 3개월 후면 모두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10월 혁명 사건의 증인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뻬뜨로그라드에 왔던 날, 핀란드 역 앞에서 그의 연설을 듣던 많은 무리 속에 나도 끼어있었다. 그 당시 나는 매우 어린 나이였지만, 그 날의 기억만큼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잊을 수 없는 날들의 추억이 내가 교향곡을 만드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⁷⁾

1917년 4월 레닌이 스위스에서의 망명생활을 끝내고 저 유명한「현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임무｣를 발표하였다. 2월 혁명이후 이중권력을 명확히 파악하여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내고, “노동자 대표 쏘비에트가 유일하게 가능한 형태의 혁명 정부”라고 선언하며 10월 혁명의 서곡을 울렸다.⁸⁾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제2번 《10월 혁명에 바침》과, 12번 《1917년》을 1917년 혁명을 소재로 할 정도로 혁명에 깊은 영감을 얻었다.

혁명 이후에 여러 예술가들이 망명의 길을 택한다. 음악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미국과 서유럽에서도 거장의 대우를 받는 스트라빈스키, 호로비츠, 하이페츠,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1933년 다시 귀국한다.) 등등... 흥미로운 것은 당시 망명한 작가 대부분이 1905년에서 1917에 이르는 시기에 샤니니즘(Saninism)이라는 말세적이며 퇴폐적인 허무주의적 사조에 경도된 작품을 양산한 이들이라는 것이다.⁹⁾ 그들은 1917년 이전부터 혁명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망명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루나차르스키¹⁰⁾가 막스 베버의 신칸트주의적 합리화 개념에 대해 비판하며 새로운 예술 이론에 대한 전망을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막스 베버의 음악 사회학은 유물론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은 신칸트주의적 합리화 개념을 끌어드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막스 베버는 음악의 합리화를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선율과 화성의 관계, 음계, 다성음악(polyvocality), 평균율, 악기 등을 들고 있다. 루나차르스키는 그것은 음악질료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음악의 생리적․정서적 요소를 무시한 일방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¹¹⁾

당대의 예술은 파시즘이 창궐하고 결국 2차대전의 발발로 이어지는 힘겨운 시기였지만 이에비해 상대적으로 예술가들은 자유로왔다. 예술가들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혁신적 기법을 옹호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실천했다. 문학에 있어서의 마야코프스키와 같은 모더니스트가 활약했고, 음악계에서도 현대음악협회(ASM)¹²⁾와 같은 단체는 표현주의의 영향력을 굳이 부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계급과 농민, 그리고 인텔리겐챠가 분리되는 것을 철저히 막아내고자 하는 당대의 요청과 무관하지 않다.¹³⁾ 당시의 분위기는 다음과 같다.

수 년간 혁명이 계속되는 사이 예술은 비로소 인민 전체의 몫이 되었고, 대중을 격려하는 수단이 되었다. 예술은 길가 도로나 굉장에까지 퍼져나가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에게까지 미쳤다. 10월 혁명의 위대한 행위에 고무되어 뻬뜨로그라드의 화가, 음악가, 배우들은 프랑스 혁명을 전례로 삼아 대규모 『축전행사』를 연출하는데 몰두했다. 1917년의 기념적인 '동궁전의 공략'을, 1920년 11월 7일 군대 브라스밴드 수천명의 합창단이 참가하여 뻬뜨로 그란드 광장과 둑에서 상연했다. 일반 청중도 합창부분에서는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불렀다.¹⁴⁾

당시 쏘련의 문화적 풍토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나 알반 베르크와 같은 전위음악가의 작품들도 연주되었다. 벨라 바르토크와 파울 힌데미트가 쏘련을 방문하여 자신의 작품들을 연주할 정도였다. 1925년 19세에 첫 교향곡을 작곡하며 현대판 모차르트라 불린 신성 쇼스타코비치는 1927년 교향곡 제2번 《10월 혁명에 바침》에서 무려 27성부가 동시에 울려퍼지는 극단적 폴리포니 형식으로 혁명에 찬사를 보낸다. 표제음악에 현대성을 반영한 창조적 작품으로 단 한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합창으로 끝 마무리를 하는 작품이다¹⁵⁾. 교향곡 3번 《메이데이(Mayday, 혹은 The First of May)》는 2번 작품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으로 단악장 표제음악이며 종결부에 합창이 포함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29년 쇼스타코비치의 노트에는 교향곡 제2번이 투쟁의 관점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한다면 제3번은 평화로운 건설의 축제적인 분위기를 그리고 있으며, 더 강한 영향력을 위해 종결부에 카르사노프의 시로 만든 합창을 도입하였다.¹⁶⁾ 이런 작품이 가능했던 것은 두 작품 모두 신경제정책(NEP) 시기에 탄생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파시즘, 세계 대전 그리고 즈다노프 비판

혁명 직후와 신경제정책 시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예술 창작을 가능케 한 사회적 토대는 변화했다. 1928년 유럽에서 파시즘이 신장하고 또 제국주의국가들이 쏘비에트 사회주의 정부를 군사적으로 침략할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던 것은 커다란 불안요소였다. 결국 쏘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프레오브라젠스키의 급속한 공업화 모델을 지지한다. 1941년 독일 침공에 대항하기위한 경제적 토대가 이때부터 쌓였다는 것에서 사후적으로도 당시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¹⁷⁾ 그러나 취약한 경제조건 아래서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했기에 농업의 집단화 과정에서 강제적 조치들이 있었으며¹⁸⁾ 노동규율도 엄격해졌다.

예술에 있어서도 러시아프롤레타리아트작가연합(라쁘, RAPP)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증가했다. 5개년 계획 하에서 작가는 돌격대 노동자를 교육하고, 예술가 소조를 조직하는 일을 시도하게 되며¹⁹⁾ 본격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태동하였다. 안드레이 즈다노프는 당시에 낙관적인 정세인식 하에서 소비에트 문학이 노동자 계급과 농민 그리고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옹호하는 지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혁명적 문학을 쏘비에트 문학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표명했다²⁰⁾. 그와 대비해서 부르주아 예술이 신비주의와 광신을 탐닉하며 도피하고, 염세주의에 빠지는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진실을 표현하는 예술은 ‘객관적 현실’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현실로서 서술하는 것이다. 그것은 혁명적 낭만주의에 근거한 경향문학이다. 무계급 사회주의를 향한 싸움에서 사회주의 정신으로 인간의식을 개조하는 가장 활동적인 조직가가 되라는 것으로 그의 연설은 끝을 맺고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음악은 인민의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음악이다. 음악적 형식이 내용을 희생시켜서는 안 되며 음악에 묘사되는 인물이나 주제는 진정한 삶이나 사회적 이상의 표현이어야 한다. 혁명적 인간상과 미래에 대한 낙관을 함께 담아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²¹⁾ 1933년 작곡하고 1934년 초연한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젠크스의 맥베스 부인²²⁾》은 초기에 호평을 받은 작품이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 구상이 본격화된 이후인 1936년 1월 26일 신문 『프라우다』의 익명의 필자는 이 작품을 쏘비에트 청중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형식주의적 작품으로 통렬히 비판한다.²³⁾ 이를 2년간 아무 문제없던 작품을 스탈린이 관람한 이후에 그가 지녔던 개인적인 분개를 표출했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은 음악에 있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이 일반화 되었던 시기가 약간 늦은 것을 감안하면 지나친 비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므젠크스의 맥베스 부인은 쏘비에트 혁명 이전의 쁘띠 부르주아 계급의 실태를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원작 소설에서와는 달리 까떼리나를 현명한 여자로 표현하였다. 남편과 시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은 그녀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생활에 대해 저항한 것으로 묘사하였다.²⁴⁾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시 『프라우다의』 비판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더구나 까떼리나의 능동적 역할을 부각하는 것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기도 하다.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욕망을 음악극 형식으로 형상화하여 완성도 있게 표현한 것도 음악평론가들이 높이 평가할 만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예술 모델이 확립되어 있지 않던 혁명초기와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던 신경제정책 시기와 달리 대공황 이후 유럽을 뒤흔들고 있던 파시즘과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쏘련은 다급한 상황에서 보다 직접적인 선동적 예술을 필요로 하였다.

실제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쏘련 정부는 모든 예술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조국 전쟁’에 투여하였다. 쇼스타코비치 1942년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도 그 중 하나이다. 여기에서도 그의 개성이 드러나는데 1악장을 제외하고는 묘사적인 요소가 크지 않다. 전곡을 통해 마치 벽화를 보는 듯한 장대함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1941년 7월 말 독일군에게 포위된 바로 그 레닌그라드에서 방공 감시대의 일원으로서 얻은 생생한 영감을 음악적으로 표현하였다.²⁵⁾ 이에 대해 볼코프의『증언』에서는 제7번은 이전부터 구상한 작품이고 스탈린 치하에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하고 있지만 어느 것이 맞는 지는 직접 듣고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그는『타임』표지에 소방관 헬멧을 쓰고 등장한다.²⁶⁾1943년 제 8번 교향곡은 쏘련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한 시기에 작곡한 것이다. 전통적인 제시부-전개부-재현부의 소나타 형식을 무시하는 것은 그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 전 국토에서 처참한 사투가 반복되었던 것이 쏘련의 현실이었기에 특히 1악장과 4악장은 무겁고 느리고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마지막 5악장에서 비로서 희망의 그림자가 보이고 그것은 장대한 피날레로 끝맺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운을 남기며 천천히 사라진다.²⁷⁾

1948년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하차투리아, 미아코프스키 등의 작품이 형식적으로 타락했고 반인민적 경향을 띠고 있다는 이른 바 즈다노프 비판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학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팀원들과 함께 더 공부하면서 정리하고자 한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즈다노프 비판과 관련하여 사회주의와 예술가에 대한 오해를 간단히 지적하고자 한다. 당시 사회주의 사회의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수 성공한 예술가의 그것과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상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봉급과 주택은 물론 코카서스와 크림 등 휴양지로 창작휴가까지 떠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도 하였다. 이를 두고 ‘예술가에 대한 국가의 예속’이라는 등 악선동을 퍼붓는 것은 치졸한 것이다.²⁸⁾ 한국만 해도 교향악단에 속한 저임금 음악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지는 예술노조의 투쟁을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저들은 아마도 베를린필하모닉 등 서구 유명 오케스트라 노동자들이 임단협 투쟁을 했던 것조차 숨기고 싶어 할 것이다. 또 1948년 즈다노프 비판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쇼스타코비치의 등 뒤에 비수를 꽂은 것처럼 묘사하고 싶어하지만 모스크바 음악원과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의 교편 활동을 금지당한 이듬해인 1949년 그는 뉴욕에서 열린 세계 평화를 위한 문화 과학회의에 쏘련 대표로 참석하는 등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²⁹⁾ 직접적으로 즈다노프 비판의 계기가 된 그의 교향곡은 제 9번인데, 전후 웅장하고 위풍당당한 개선곡을 원했던 쏘련에서 그의 작품은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작품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짧고 재치가 넘치는 소품이지만, 특히 50년대 중반 미국 경음악을 연상케 하는 1악장을 듣고 당시의 쏘련 인민들이 아연실색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요는 즈다노프 비판과 관련해서 전후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정도로만 정리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스탈린의 희생양인가?

볼코프의『증언』은 쇼스타코비치의 예술적 창조력이 스탈린에 의해 억압되었고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에 대해 끊임없이 내적으로 저항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에서 1983년 초판이 나온 이후 2001년 개정판이 나오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부르주아 평론가들의 양 극단의 평가중 후자에 해당하는 이들이 주로 이 책을 거명하기도 했기에 이 책과 관련해서 언급을 하고 마치려 한다. 미국으로 망명한 음악학자인 솔로몬 볼코프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출간 당시 이 전기의 내용에 대해 쇼스타비치의 유족들은 반발하였다. ‘위서다, 아니다’라는 논란이 있지만 직접 확인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데이빗 패닝이라는 음악 평론가의 글을 보기로 하자. 반공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은 걸러서 봐야겠지만 『증언』의 진위성을 의심하는 근거로 그의 글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소 길지만 현재 『증언』만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기에 인용한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고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 원문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아쉬운 대로 일부 수정했다.

이 책을 솔로몬 볼코프의 책이라고만 한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 책이 쇼스타코비치의 회상을 인용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 작곡가가 페이지마다 서명으로 인정하고 수십 년 전에 쇼스타코비치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던 글을 단어 그대로 전재했던 부분에 대해, 볼코프는 속 시원히 그것의 사실성을 해명하지 못했다. 그런 부분이 “솔로몬 볼코프가 편집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회상”일 수 없다면 나머지 부분의 정당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그 문제는 아마 볼코프가 타이프를 쳤다고 하는 속기 노트의 진위가 입증되면 풀릴 듯하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제시하지 못해 희망이 없다.

모든 증거 불충분에도 불구하고 『증언』의 정통성을 믿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1970년대 아방가르드의 거품이 붕괴했을 때 그리고 많은 서구 지식인층이 공산 치하의 삶이 쓰디쓰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 새로운 예술과 지성의 자기 망상이 문을 열었다. 이중의 희생양이기보다는 새로운 영웅으로 존경받아야할 사람이 누구였겠는가? 즉 동유럽 전체주의와 서구의 과격한 미학 운동으로부터 말이다. 그래서 쇼스타코비치가 공산당에 동조했을지 모른다는 증거는 쉽게 무시되었고, 그가 희생양이라는 증거에만 집착하고 그것을 증폭했다.

집착했다? 자, 그가 공산당에 가입하도록 가한 압력에 굴한 것이 수치스러워 <현악 사중주 8번>을 쓴 뒤에 자살하려 했다는 얘기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 친구인 레프 레베딘스키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가 자살을 감행하려고 둔 수면제를 작곡가의 아들에게 안전하게 보관하라고 준 것은 레베딘스키 자신이었다. 막심³⁰⁾에게 재빨리 전화를 걸어 사태를 무마할 수 있었다(그러나 수면제는 여독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전히 낭만적인 상상력에 호소하고 있어 영국에서는 교사 지침서를 통해 5학년 우등생들에게 사실³¹⁾로 가르치고 있다. ³²⁾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쇼스타코비치는 분명히 사회주의자이다. 키릴 콘드라신(Kirill Kondrashin)³³⁾이 남긴 쇼스타코비치 전작의 한국 라이선스 음반³⁴⁾의 해설지조차 그가 사회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격변의 시기에 그가 지닌 창작자로서의 개인적 취향을 온전히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노동자 인민의 정권을 수립하고 제국주의에 처절하게 항쟁한 쏘련이 아니었다면 그의 음악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대의 미국과 서유럽 부르주아 음악이 음 구조 내의 형식적 실험에만 매몰된 것과 비교할 때 그의 작품의 가치는 더욱더 빛날 것이다.

끝으로 쇼스타코비치와 관련한 쏘련에서의 자료의 영역본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최소한 필요에 따라 단편적으로만 인용하고 있는 프라우다 지의 비판 같은 자료는 전문을 구해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지인 중에 한 명이 러시아어로 된 쏘련 원서를 갖고 있다고 했으나 그것을 독해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 밖의 것이었다. 필자가 나름대로 노력해서 자료를 입수했지만 상당수의 자료는 명백히 이데올로기적 저의를 지닌 반쪽 자료였다.

즈다노프 비판과 관련해서는 나름대로 언급했지만 아직도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엔 스스로의 학습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기회가 된다면 쇼스타코비치가 작업했던 영화음악과 관련해서도 더 알고 싶다. 그의 147곡의 작품 중 46곡이 영화와 관련한 곡이기도 하고, “레닌이 일체의 예술 부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³⁵⁾ 그러나 개인적인 고백을 솔직히 하자면 영화보다는 음악에 더 흥미가 있다.

마치며

비정규직법안, 노사관계로드맵, 한미FTA 등 치열한 계급투쟁의 과제가 산적한 시기에 음악에 관해 논하는 것은 자칫 한가한 일로 보일 수도 있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단적인 예로 서술하겠다. FTA 범국본의 정세인식과 투쟁방식은 지극히 국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체 이름부터 등장하는 ‘국민’은 그렇다 치고, －이것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이들은 시종일관 ‘국가’경쟁력과 ‘국가’경제를 걱정하며 ‘국익’을 걱정하는 우국지사가 되어 전선을 흐리고 있다. 한미FTA가 한국과 미국의 독점자본가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고 한국과 미국 양 국가는 이들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고 있는 집행위원회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저들은 애써 부정하고 있다.

그들이 제국주의에 소부르주아적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11월 22일 시청에서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양극화 해소, 한미 FTA저지 1차 범국민총궐기 대회”에서 필자와 몇몇 문예운동 활동가 동지들을 경악케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도부의 형식적인 진행에 벌써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 즈음 퍼포먼스가 있기에 잠깐 구경이나 해볼까 하던 찰나 거대한 출력을 자랑하는 스피커에선 영화 “스타워즈”의 주제곡―'Star wars(Main title)'―이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었다.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³⁶⁾가 작곡하고 주빈 메타(Zubin Meta)가³⁷⁾ 초연한 그 곡은 이른 바 ‘미제국주의의 로망’을 드러내는 공상과학영화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웅장한 주제곡이다. 당시 대열의 뒤쪽에서 관전했기에 그 퍼포먼스가 의미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고, 혹시라도 그것이 미제를 풍자하는 음악이 아닐까하는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퍼포먼스 자체도 크게 볼 것이 없었고, 설사 그 음악을 풍자를 위해 썼다 할지라도 스타워즈 주제곡의 사용은 적절치 못한 것이다. 착잡한 심정으로 돌아온 후 실제 문예운동으로서 투쟁에 복무하고 있는 동지 몇 명에게 당시 상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동지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은 당시 음악 담당자라면 별 생각없이 그 음악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해서 일말의 ‘기대’마저 사라져 버렸다. 당시 집회의 단적인 풍경은 전국 각 지역에서 겨울을 녹인 투쟁의 열기가, 서울에서 폴리스 라인 안에 갇혀버린 상황을 묘사하는데 더없이 좋은 소재가 아닐까 한다.

당일 시청에서의 본 집회보다는 차라리 사전행사격인 서울역에서 반FTA 집회가 ‘상대적으로’ 나았다. 철도 노동자 투쟁대회가 끝나고 빈민대오를 중심으로 열린 집회 중엔 인권단체의 퍼포먼스가 있었고 효과적인 배경음악이 깔리고 있었다. 퍼포먼스는 FTA와 미제국주의에 고통받던 평택농민과 노동자 지식인이 함께 일어나 저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으로 구성 자체는 짜임새가 있는 편이었다. 그조차도 인민연합적인 한계에 머무르는 방식이었고, 중간에는 모던록 밴드 버브(The Verve)의 ‘달콤씁슬한 교향곡(Bittersweet symphony)’ 같은 상업적 음악도 등장했지만 마지막에 나온 한 곡은 적절했다고 평하고 싶다. 그것은 칠레 밴드 뀔라빠윤(Quilapayun)³⁸⁾의 ‘단결한 인민은 패배하지 않으리(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가 바로 그것인데 곡 제목은 바로 칠레에서의 저항 집회에서 자주 등장하던 구호이다. FTA에 맞선 국제연대를 형상화하는 적절한 선곡이기에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씁쓸한 사례와 대비해서 선택했다.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서 계급투쟁에 대한 관점도 드러날 수 있다. 또 혁명기에는 선진적인 예술이 한 무더기의 정치문건 이상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고무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무엇이 노동자계급의 앞길을 밝힐 예술인가를 토론하는 것도 정치노선 논쟁처럼 치열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것은 예술과 혁명운동의 결합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임무이며, 노사과연에서 진행하고 미학 세미나가 그 작은 시작이 될 수 있길 바라마지 않는다.

끝으로 참고 자료 중 하나인 로버트 그린버그(Robert Greenberg)의 Great Masters: Shostakovich―His Life and Music과 해당 음원을 구해준 미학 세미나 정호영 팀장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노사과연>

<저물어 가는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

쇼스타코비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최상철 ∣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