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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와 노동 - < 기타 >
제목 유족연금: 138,600원!
글쓴이 배은주|회원 E-mail send mail 번호 558
날짜 2013-11-06 조회수 1301 추천수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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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박 씨 할머니는 최근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한 통의 안내문을 받았다. 공책크기 만한 종이 한 장 가득 무어라 적혀 있긴 했으나 할머니는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먹기가 어려웠다. 종이 맨 위에는 ‘사망 관련 국민연금 급여청구 안내’라고 크게 쓰여 있었고 그 밑에 지난 여름에 세상을 떠난 큰아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할머니는 안내문에 쓰여 있는 상세한 설명을 읽고 또 읽어도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죽은 큰아들과 관련된 것이려니 대충 눈치 채고 출가한 둘째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째 딸이 큰아들의 사망과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올해 여든이다. 그이의 남편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생전에 소규모로 자기 사업을 하다가 할머니가 사십 대 후반이던 때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남편이 쓰러지자 가족들은 작은 집마저도 지킬 수 없었고 곧 허름한 전세방을 찾아 전전해야 했으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머니는 생활전선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일이고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했다. 남의 집 일을 하고, 큰 장이 열리는 곳을 찾아 잡동사니를 팔러 다니고, 그러다가 나중엔 노점상으로 정착했다. 피할 수 없는 뜨거운 햇빛과 살을 에는 칼바람 그리고 거리의 매연과 먼지바람에 얼굴은 점점 거칠어지고 옷차림은 갈수록 궁색해졌다. 힘은 힘대로 들고 궁핍함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의 귀가를 반겨주는 남편이 든든했다. 비록 몸 반쪽이 불편하고 말조차 어눌해진 그런 남편이었지만, 남편 없는 여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사실 여러모로 사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마치 다짐을 받으려는 양, 그렇게라도 오랫동안 자신 옆에 있으라고 어린 자식 다루듯 매일 저녁 남편을 얼렀다. 하지만 그런 순박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오십 대 중반을 넘긴 다음 해에 남편은 야속하게도 그이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힘이 되어주던 남편이 떠났지만 할머니의 상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니 오랫동안 상심해 할 여유가 없었다. 가난에 찌들어 사는 하루살이 인생에게 감정에 매몰되는 일은 차라리 사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구부려야 편한 나이가 되고 말았다.











팔순을 삼 주 앞 둔 어느 여름날 새벽, 할머니는 경찰로부터 큰아들로 추정되는 주검이 발견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다른 자식들에게도 같은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다. 주검의 주머니에 가족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쪽지 한 장이 있었던 것이다. 가족 모두는 황망함에 빠졌다. 확인할 것도 없이 큰아들이 분명했다. 큰아들의 죽음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큰아들은 중학생 때부터 사회생활을 잘 하지 못했다. 학생들과 싸우고 공부도 등한시하고 몇 차례 가출을 하더니만 끝내는 중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가난 때문이었는지 학교 폭력 때문이었는지 부모의 무관심 때문이었는지,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그 실체에 대해 부모도 아들도 분명히 알지 못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들이 아들에게 무엇인가 잘못 한 것 같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어 술에 의존했고, 아들은 아들대로 잘못 살고 있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환각제를 복용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려고만 했다. 큰아들은 남들이 쉽게 말하는 사회부적응자로 그리고 불량배로 낙인이 찍혔다. 그리고 얼마 후 사회정화라는 미명 아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수개월 동안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가방 끈도 짧고 주홍글씨가 박힌 아들에게 새 세상으로 가는 길은 좁고 험난했다. 아들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이제 병든 아버지에게 쏟아부었고, 어머니의 얇은 주머니를 털어가기 시작했다. 삼청교육대는 한 인간을 정화하거나 순화하기는커녕 오히려 한 인간의 영혼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 것 같았다.











심약하고 모질지 못한 아들에게 사회는 너무나도 높고 큰 장벽 그 자체였다. 일의 종류는 한정되었는데, 아들은 힘들고 부당한 일을 잘 참아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자주 일을 놓아야 했고 경력도 쌓이지 않았으며 따라서 인정받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여하간 그렇게 삼십여 년 동안 주로 택시, 마을버스, 관광버스, 출퇴근버스 등을 운전해 돈을 벌었고 그 외에 도매시장에서 일용잡부로, 오토바이 퀵서비스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때보다 직업 없이 지내는 날이 더 많았던 터라 나이가 들어서도 늙은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는 게 예사였다. 아들이 마지막에 했던 일은 중소기업체 사업주의 승용차를 운전하는 일이었는데, 사장이 자신에게 잘 해준다는 말을 몇 차례 하곤 했다.

그런데 몇 달 전엔 아들은 좋다는 직장도 그만 두고는, 빚도 많고 여자 친구하고도 문제가 생겼고 건강도 좋지 않아 살기 힘들다는 말들을 부쩍 늘어놓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변변치 못한 자식의 푸념이려니, 듣고 흘려버렸지만, 가슴 속에 돌멩이 하나가 더 얹어지는 것 같아 아쉽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을 매 황망하게 세상과 이별하고 만 것이다.











아들은 자신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의 흔적을 좇아다니며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불편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적 여유를 갖기도 전에 죽음을 인정해야만 아들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군데의 금융권을 좇아다니면서 아들의 죽음을 차차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금 잔고는 거의 없었고 단지 아들이 살아 있을 때 괴로워했던 채무내용이 확인되었다. 채무금액은 약 2,600여만 원 정도였다. 우선상속자인 할머니는 아들의 채무를 상속받지 않기 위해 법원에 한정승인신청을 했다.











유족연금 때문에 둘째 딸과 만나기 전에 딸이 시키는 대로,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온 안내문을 팩스로 딸에게 보내고, 또 자신이 가야만 발급해 주는 서류를 준비했다. 딸은 딸대로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서류를 챙겼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온 안내문의 내용이란, 연금가입자가 사망하게 되면 국민연금 수급권이 발생하게 되는데, 유족연금, 사망일시금, 반환일시금 등의 형태로 지급되므로 어디에 해당되는지 잘 살펴보고 청구하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연금불입도중 사망하였기 때문에 유족이 연금을 받을 수 있긴 한데 문제는 가입기간이 1년 미만인데다가 자살을 했기 때문에 여러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유족연금을 신청했을 때, 공단은 사망자의 사인을 확인하기 위한 사체검안서, 변사사실확인원을 요구했고, 자살을 유발할 수 있는 우울증과 관련된 약을 복용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10년 치 건강보험요양 급여내역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공단은 늙은 할머니에게 유족연금의 자격이 되는지 이런저런 서류를 요청하며 저울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다른 자식이 없었다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싶었다. 아직 죽은 아들 때문에 멍하니 있을 때도 많은데, 아들의 시체를 넘겨받은 병원이며 경찰서며 건강보험공단에 가서 아들의 사망과 병치레를 두 눈으로 다시 확인해 오라는 공단의 요구가 적절하고 타당한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요구들은 당신의 아들은 국민연금을 1년도 채 내지 못했고 또 그나마 자살을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황상 문제가 있어 보이니 납입한 연금만 반환받으라고 종용하는 것 같았다. 혼자 사는 노인이 이런 것을 이해하고 처리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서류라면 그들 관공서끼리도 충분히 교류가 가능할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연금지급액을 최소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들은 마치 투명한 유리가면을 쓴 듯 그들의 본색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65세에 기초연금 받게 되면 ‘인생 잘못 산 것’이라고 복지부 김용하 전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이 9월 27일 KBS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에 출연하여 이같이 말했다고 하는데, 이미 한국사회에는 스스로 인생 잘못 산 것 아닌가, 하며 열패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박 씨 할머니처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자식들을 둔 노인들은 더욱 그렇다. 자신은 정직하게 죽어라고 일하는 데도 사회적 구성원의 하나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다가 부모로서 자식농사 제대로 못 지었다는 사회적 질책까지 덤으로 받으니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보자. 과연 정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는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있는가. 국가는 사회구성원에 책임을 지기보다는 오히려 낙오자를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는가. 즉 인생 잘못 살게 만들지 않았느냔 말이다. 잘 보고 할 것도 없이, 사실 모든 시스템은 부자이고 잘 나가는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반면 사회 부조리를 쉽게 넘기기 어려운 사람들은 이 사회와 끊임없이 충돌하고 대결하고 그러다가 사회와 격리되고, 그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자동적으로 ‘잘못 산’ 인생들로 구분되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나락으로 빠지는 사람들, 소외되는 사람들, 평생 가난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을 돌보기는커녕 오히려 인생 잘못 산 것이라고 개인에게만 탓을 돌려???











할머니는 여든의 나이에도 여태 노점 일을 한다. 이제는 허리가 구부러지고 발걸음도 굼뜨고 심장질환과 고혈압 때문에 약을 처방받고 있지만 집안에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몸은 편해도 마음도 불편하고 경제적으로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죽은 큰아들 말고도 자식들이 셋이 있긴 하지만 둘은 넉넉하지 못해 오히려 걱정을 해야 할 판이고 나머지 하나는 손자들 키우느라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때라 가끔씩 받는 용돈 외에 전적으로 기대긴 아직 어렵다. 물론 지금이라도 할머니가 일을 그만 둔다면 부모를 몰라라 할 자식들은 아니지만 할머니는 아직 그러고 싶진 않은 것이다. 그러니 ‘인생 잘못 살아’ 받는 약 10만 원 정도의 기초노령연금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렵고 이래저래 지금 일을 놓을 수가 없다.

이제 할머니는 아들을 앞세운 이유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자기편의주의적인 심사를 통과하고 유족연금으로 매달 138,600원을 수령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 유족연금을 두고 아들이 자신에게 주는 용돈이라고 했다. 정말 그런지 모른다. ‘세상을 잘못 산’ 큰아들이 아직도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드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서만 드릴 수 있는 용돈일지 모르겠다. 현기증 나는 세상에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평생 속만 썩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면서 어머니에게 드리는 속죄의 용돈 말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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